영암에는 국보급인 해탈문을 비롯 보물급, 지방문화재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 그 중 서호면에는 고인돌 등 선사시대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특히 서호 엄길리 철암산의 자연암반에 새겨진 암각매향명(岩刻埋香銘), 일명 글자바위는 보물급으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가 뛰어나다.

그런데 제1309호로 지정된 이 보물을 좀더 쉽고 편리하게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아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려말 충혜왕(5년) 때 바위에 새겨진 걸로 판명된 이 보물은 조성시기, 목적, 장소, 집단, 발원자, 화주와 각주 등 모든 것이 상세히 기록됐고, 보존상태가 온전해 정확히 판독할 수 있는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바위에 새긴 매향비로 알려졌다.

내세의 미륵불 세계에 태어날 것을 염원하면서 향을 묻고 새겼던 엄길리 암각매향명은 고려말 조선초의 매향방식과 지방의 민간신앙을 살피는 중요한 자료인 동시에 향촌 공동체조직의 실상 등을 반영하는 귀중한 금석문으로 사료적인 가치가 뛰어난 문화재로 인정, 보물로 지정해두고 있다.


그런 귀중한 문화재를 보물급 문화재로 보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민망할 정도로 방치해두고 있어 많은 향우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최소한 암각매향명에 대한 학술적 가치나 '암각매향명 가는길'이란 안내 표지판이 있어야 할 곳에 없거나 있어도 그마저 형식적으로 돼 있다고 한다.

나아가 암각매향명길 조성과 주차장, 쉼터 등 편의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역주민들은 주차장 정도라도 설치해 달라고 거듭 요구하고 있지만, 행정당국은 도로변의 고인돌 유적지도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산 속에 있는 암각매향명이라고 해서 찾겠느냐며 주차장을 내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한다.

자칫 주차장 시설을 해놓았다가 유지관리에 따른 예산낭비만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때문에 주차장 설치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지역주민들의 요구를 뒤로하며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예산 낭비성이 우려된다며 간단한 편의 시설마저도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은 너무 행정적인 잣대만 들어대지 않는가 생각된다.

지역주민들의 요구는 잘 조성된 주차장 시설이 아닌 자갈이나 깔아놓은 자연상태의 빈 공터라도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향우들은 소중한 문화재를 십분활용해 지역발전을 바라는 애향심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봄직하다.


문화재는 편의시설이 함께 따라줄 때 더욱 가치를 부여, 빛이 난다. 표지판 하나라도 제대로 설치해 보물급이 빛바래지는 부끄러운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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