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토기, 옹관 문화의 연장선

최초의 유약을 바른 도자기의 탄생지

최근 남도의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일 열린 학술세미나를 통해 해남에서 발견된 초기의 청자가 다시 강진으로 건너가면서 고려청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청자로드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모든 청자의 발달에는 영암에서 시작된 시유도기 일명 구림도기로 불리는 영암 도기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남도 도자기의 시작이 됐던 구림도기를 되짚어보면서 남도의 도자기의 역사를 집중 기획해본다.

남도의 도자기 시작은 흔히 구림도기에서 찾는다. 이유는 청동기시대부터 내려오는 토기에서 이어진다. 지금까지의 유적발굴조사에 따르면 청동기시대의 영암은 역사상 마한의 소국 월내국이었다.

마한의 연방체제의 소국이었지만 중국과 바닷길이 열려있고 비옥한 자연환경은 선진문물의 유입이 쉬운 곳이었다.
 
당시 토기는 그 지방의 문화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서호면 장천리 주거지에서 발굴된 붉은 토기항아리는 측면 곡선이 아름답고 안정감을 띄고 있고 대칼로 문지르기를 통해 은은한 장식효과까지 내는 예술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에 영암의 토기 전통 가운데 놀라운 것이 옹관이다. 입이 넓은 큰 항아리에 시신을 넣어 매장하는 옹관묘 장례풍습은 신석기 시대부터 서해안일대에서 분포하기 시작했다.

3세기~5세기 중반까지는 영산강 유역에서 크게 성행했다. 옹관문화가 알려진 것은 지난 1960년 시종면 내동리 고분에서 길이 3m, 직경 1m, 무게 500㎏의 대형 옹관이 발굴되면서 부터이다.
 
옹관은 크기가 대형화되었고 십여개가 매장되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당시 옹관이 대량 생산되었음을 알게 했다. 이는 상당히 발전된 토기제작기술을 보유한 전문적인 생산시설이 형성하고 있는 것을 입증했다.
 
영암도기박물관에도 옹관의 채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삼호읍 용암리에서 출토된 U자형 옹관은 2개가 1조를 이루는 함구식 옹관으로 마한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태쌓기 기법으로 만들어진 옹관은 당시에도 영암지역에 상당한 실력을 갖춘 토기제작기술을 갖춘 것을 알게 한다.
 
이런 청동기 시대의 토기와 옹관을 통해 영암지역에서의 토기기술은 입증된 셈이다. 이어 지난 1986년과 1996년 이회여대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된 구림도기 가마터(사적 제338호)는 남도의 도자기 역사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됐다.
 
이때 발굴된 구림도기가마터는 8~9세기 대규모 도기 제작장이 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여개의 가마로 추정되는 곳에서 수많은 생활용기와 처음으로 도기위에 유약을 바르는 시유도기가 발견됐다.

이런 발굴은 크게 두 가지의 역사성을 갖게 됐다. 시유도기, 즉 구림도기는 나중 두가지로 변천됐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청자로 발전해 분청사기, 백자로 이어지는 도자기로 길을 이어갔다. 또 하나는 옹기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구림도기가 이런 두 가지로 발전되는 과도기에 위치했다고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자기의 특성과 옹기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약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도자기의 첫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유약은 재를 이용해 다채로운 색상과 장식 등으로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매개체이다. 이를 다시 표현하면 기능성을 높이고 아름다움도 높이는 성과를 가진 것이다.

기존의 도기위에 유약을 묻혀 위생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내면서 기능성을 높였고 유약을 이용해 다양한 표현양식으로 아름다움을 더했다. 이런 시유도기의 시작으로 계속이어져 청자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구림도기가 남도 도자기의 시작점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여기에 황토를 이용하고 온도를 낮게 구워내는 소성온도 등을 고려해 보면 구림도기는 옹기로 발전하는 충분한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흔히 접하는 구림도기지만 남도의 도자기 역사에서는 쉽게 자리를 내줄 수 없는 막중한 위치에서 남도의 도자기 역사를 흘러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영암 도기는 경제력의 상징이었다" - 영암군 도기박물관 김규화 학예연구사

영암군 도기박물관 김규화 학예연구사를 만나 남도 도자기 역사에서 구림도기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 학예사는 구림도기가 남도의 도자기 역사에서 가장 앞서 있음을 강조했다. 김 학예사는 "구림도기가 생산된 영암지역은 근원적으로 도기제작 기술축적을 바탕으로 고화도 소성방법과 시유기법이 나타난다"며 "강진청자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역사에서는 구림도기가 가장 앞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학예사는 "구림도기는 점토 자체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태에 서민들이 주로 사용했던 생활 도기"라며 "고령토에 석영, 장석, 망간 등 다양한 성분들이 들어가 상대적으로 굽는 온도가 낮은 것이 구림도기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구림도기의 디자인에 대해 김 학예사는 "구림도기는 뚜껑 등에 독특한 형태를 담고 있다"며 "이런 형태는 당시 무역항이었던 상대포를 통한 선진문물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자체적인 기술력을 갖춘 상태에서 제작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약에 대해 김 학예사는 "구림도기의 녹갈색 유약은 당시 영암지역의 경제능력을 알려준다"며 "당시에 획기적인 유약의 사용은 영암이 인근 지역보다 힘을 가지고 앞선 도자기 기술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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