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조 선생 가야금 산조 창시... 6개 주요 유파 이어져

영암 출신 한성기, 김병호, 김죽파 선생 수많은 제자 양성

영암 시종 출신 김병호 명인의 가야금산조가 지난해 5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올해로 탄생 101주년을 맞으면서 영암의 가야금 역사가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영암은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 선생의 고향이면서 김창조 선생이 수 많은 제자를 길러 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창조 선생의 가야금산조 원형은 사후 100여년 동안 역사속에 뭍여 있어야 했다.
 
1990년 7월 중국 연변에 공연을 갔던 가야금 연주자 양승희씨(후에 인간문화재 지정)는 중요한 자료를 입수했다. 자신이 그토록 찾던 김창조 선생의 산조 악보를 발견한 것이다.

'김창조 산조의 악보'는 김창조(1856~1919) 선생의 수제자인 안기옥 선생이 북한에 남겼던 것이였으며, 북한에 유학했던 김준이란 연변대 교수가 안기옥 선생으로부터 받아 소장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수교 시기가 1992년었던 것을 감안할 때 정치적인 또는 기타 복잡한 국제관계 때문에 김창조 산조의 악보는 오랫동안 우리땅에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양승희교수가 오랜 각고 끝에 1999년 6월 7일 김창조 가야금 산조를 공연함으로서 산조의 창시자 김창조 산조가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됐다. 당시 공연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야금 산조 효시의 소리'를 재연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창조 산조의 확인은 또한 영암이 가야금 산조의 본향이라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김창조 선생은 영암읍 회문리가 고향이다. 2000년 영암군은 가야금의 본향임을 선언하고 각종 현창사업을 시작, 현재도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광주서 오다보면 신북을 지나 휴게소앞에 세워진 대형 입간판이 보인다. 입간판을 세운 것도 영암이 가야금의 본향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고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창시자 김창조 선생이다.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 선생은 수많은 제자를 길렀지만 정작 그가 남긴 산조의 원형은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 있었다.

수제자인 안기옥이 월북하면서 남한에서는 후계자가 사실상 끈긴 것이나 다름 없었다. 산조는 개성과 즉흥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개개의 연주자들이 '류'를 만들어 연주했을 뿐 그 원형과 뿌리는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김창조의 악보가 발견돼 산조의 뿌리가 확인되면서 그에 따른 '류'들의 계통도 보다 분명해 졌다. 김창조 선생을 최고봉으로 그 아래에는 안기옥(1894~1974), 김광준(1886~), 한성기(1889~1950), 정운용, 강태홍(1894~1968), 김병호(1910~1968), 김죽파(1911~1989) 선생등 7명의 주요 제자들이 있었다.

이중에서 한성기, 김병호, 김죽파 선생이 영암 사람이다. 한성기 선생은 군서면 모정리 출신이고, 김병호선생은 시종면에서 태어났다. 김죽파는 김창조 선생의 큰손녀로 덕진면 영보리에서 태어났다 . 
 
이들은 다시 제자를 키웠다. 안기옥은 성금련(1923~1974)과 김진(1926)을 키웠고, 김죽파는 양승희(1948~)를 가르쳤다.

한성기와 정운용 선생은 최옥삼(1905~1956)을 키웠고, 최옥삼은 함동정월(1917~1990)에게 연주기법을 전했다. 김병호 선생은 강문득 선생을 가르쳤고, 강문득(1945~) 선생은 이번에 기찬랜드에서 공연을 한 선영숙 명인에게 전했다.(가야금 산조의 창시자 김창조 선생. 양승희 박철 편저. 영암문화원 발행 참조)
 
이렇듯 산조의 계통과 뿌리는 1800년대 후반에 김창조 선생으로부터 시작돼 2011년 오늘날 양승희, 선영숙등으로 쉬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럼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소위 '류'라는 것들은 어떤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인 유파는 오늘날 6개 유파라고 한다. 김죽파류, 강태홍류, 김병호류, 김윤덕류, 성금연류, 최옥산류등이 그것이다. 모두 김창조 선생의 전통과 맥을 잇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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