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자주 못간 고향을 가까이 하면서 살아 갈까 합니다"
 
맨주먹으로 고향을 떠나 서귀포 시내 중심가에 10억대의 빌딩을 소유하며 노후를 편안히 살고 있는 최금채 서귀포 법환교회 장로.
 
고향인 미암면 신포리에서 가난을 떨쳐보고자 동네선배와 40여년 전, 고향을 떠났던 최 장로는 서귀포에 정착하여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결혼후 6개월만에 군에 입대하여 만기전역후 고향에 돌아왔으나 얼마후 혼자 계신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제주에 가면 그나마 과수원 관리, 막노동 등 일꺼리가 많아서 없는 사람은 살기가 좋다"는 말에 선뜻 고향선배를 따라 나선 것이다.
 
21세때 만났던 아내 박정애 여사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떠나온 그는 서귀포 법환마을에 정착,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과수원 일을 비롯해 막노동 등 무슨 일이고 일당주는 일이라면 열심히 해서 살아갔다.
 
"정말 부지런히 일하고 저축하면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다 통장을 확인해보니 저축이 많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아내와 상의하여 누나가 살고 있는 고향 삼호에 땅을 사놓았다.

그후로도 열심히 일했던 그는 어느 날, 고향의 누나로부터 영산강 개발로 땅값이 많이 올랐으니 땅을 팔아 과수원을 사는데 보태쓰라는 말을 전해왔다. 부부는 저축해둔 돈과 합해서 당시 2천500평의 과수원을 매입했다. 꿈에 그리던 농장을 비로소 갖게 된 것이다.
 
그는 이후로도 열심히 일해 청와대에서 저축의 날 수상자로 국민포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정말 벌어서 저축만 할줄 알았지 쓸줄 모르는 부부였지요" 부부는 또다시 2차로 2천여평의 과수원을 매입했다. 이젠 그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몸이 아픈줄도 모르고 열심히 살았는데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것이다.
 
그러다 신앙생활로 열심히 건강관리하며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나 싶었는데 또다시 폐암판정을 받았다. 급히 수술을 받고 정신력으로 기도하며 지금은 모두 좋아졌다. 신앙생활로 다져진 그의 인내력으로 뇌졸증과 폐암을 극복하게 된 것이다.
 
어느덧 나이 70을 넘긴 그는 과수원을 처분해 서귀포 중심지에다 싯가 10억원 정도의 5층빌딩을 매입했다. 맨주먹으로 고향을 떠나 제주에 정착한 땀의 결실이 그의 노후를 보장해주고, 다시 고향을 돌아보게 하는 여유를 가져다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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