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 회사정의 ‘적송’, 양장 와우등의 ‘곰솔나무’
구릉을 따라 펼쳐진 학파들녘 가운데 서호강 굽이쳐
‘와우정’밑 소나무 동산서 놀던 어렷을 적 기억 또렷


▲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나무. 일제시대에 기름을 공출해 가는 과정에서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커다란 가지 하나를 잘라냈다고 한다.
영산로 배롱나무길을 따라 터벅터벅 걷다보니, 어느덧 삼리(三理) 중 하나인 양장리에 도착했다.(군서 사람들은 모정리, 동호리, 양장리를 함께 묶어 삼리라고 부른다) 양장마을에 가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와우등’이라고 불리는 곰솔동산이다. 이곳에 수 백 년 된 곰솔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모정마을에 이팝나무와 팽나무가 있고, 동호마을에 느릅나무가 있다면, 양장마을에는 ‘곰솔나무’가 당산나무 역할을 하고 있다. 곰솔은 흑송(黑松)의 순 우리말이다.

해풍에 강하여 주로 해안가에 방풍림으로 심었다. 표피가 두껍고 검은색을 띤다. 적송이 여성스러운 반면에 곰솔은 남성적이다. 가지의 뻗침과 삐침이 힘차고 거리낌이 없다. 이 와우등에는 20여 그루의 크고 작은 곰솔들이 마을을 지키는 파수병처럼 촘촘히 늘어서 있다. 영암고을에서 이렇게 커다란 곰솔나무가 집단적으로 자라고 있는 마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구림의 서호정마을 회사정 주변에 멋진 소나무들이 있긴 하지만, 소나무 종류가 다르다. 회사정 적송이 기품 있는 선비의 모습이라면, 와우등 곰솔은 우람한 장수의 모습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일 어른인 곰솔 곁에 ‘와우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소나무가 너무 웅장해 보여서 그런지 정자가 조금 옹색해 보인다. 서편에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원두막이 있는데, 더욱 어색해 보인다. 하루라도 빨리 철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곰솔나무 사이사이에 느티나무를 여러 그루 심어 놓았는데, 이것 역시 빨리 제거해주는 것이 소나무도 살리고 곰솔동산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는 지배적인 여론이다.

▲ 곰솔공원에서 내려다본 은적산과 학파들녘이 한 폭의 풍경화와 같다.
사실, 조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소나무만큼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주는 나무도 없을 것이다. 산업화 이전만 해도 “소나무 아래서 태어나 소나무와 함께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는 말이 당연시 될 만큼 사람들과의 관계가 밀접했다. 태어날 때 잡귀를 막기 위해 금줄에 솔가지를 끼워 놓았고, 혼례식의 초례상에도 꽃병에 소나무 가지를 꽂아 놓았다. 배고프면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먹었고 한가위 때는 솔잎 위에 떡을 쪄서 먹었다. 집도 소나무로 지었고, 관도 소나무로 짰다. 솔잎을 갈퀴로 긁어 모아서 군불을 지폈고, 강솔을 캐다가 대보름날 깡통 돌리기를 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하루라도 소나무 동산에 가서 놀지 않은 때가 드물었다.

소나무는 또한 정신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은연중에 우리 한민족의 의식 속에 절개와 지조, 장수와 풍류를 심어 놓았다. 세한송백(歲寒松柏:날씨가 추워진 뒤에라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이니, 세한삼우(歲寒三友:소나무, 대나무, 매화)니, 십장생(十長生)이니, 하는 말들도 모두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표현한 것들이다. 소나무 위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학 그림(송학도), 노송(老松) 아래 앉아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잠겨있는 도인 그림(송하도인도) 등 소나무는 문인화의 좋은 소재이기도 했다. 심지어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가사로 애국가에도 등장한다.

나는 소나무와 관련된 표현 중에서 특히 ‘못생긴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속담을 제일 좋아한다. 젊은 시절부터 고향마을에 내려와 선산을 지키며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꼭 못 생긴 소나무를 닮은 것 같아서이다. 곰솔 동산 한 가운데에는 이 마을 출신인 김재흔(金在欣) 시인이 쓴 시가 새겨진 시비가 두 개 서 있다. 양장리라는 제목의 시이다. 

     양장리(羊場里)

     臥牛型局
     뿔난 자리에 
     
▲ 양장마을 출신 시인, 김재흔 시인의 시가 새겨진 시비가 눈길을 끌고 있다.
百濟가 심어놓은
     한 그루 소나무
     해마다 대보름엔 
     술 취해 춤을 춘다.
     武寧王妃 속옷 잡고
     서슬 푸른 칼에 맞아
     죽어간 머슴놈
     넋을 달래
     넋을 달래 풍년을 빈다.
     산발한 머리 풀고
     비참하게 쓰러진
     바람과 바람 사이
     어둠汁을 한 입 물고
     잡초밭에 심은 핏줄
     뻘밭이 끈끈해도
     뿔에 얹힌 양장리
     꿩한 눈에 비치어오는
     흰구름 따라
     百濟의 하늘에 솔개가 떴다.

시를 다 읽고 나서 서편 동산에 있는 소나무 그늘로 갔다. 구릉을 따라 황토밭이 펼쳐지다가 너른 학파들녘이 아슴하게 은적산 기슭까지 이어진다. 그 들녘 한 가운데로 서호강이 굽이쳐 흐른다. 언제나 그렇듯이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농촌 풍경은 아늑하고 평화롭다. 여성스러운 은적산 골짜기마다 고만고만한 마을들이 수굿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신작로가 유난히 정겨워 보인다. 저 길을 따라 걸어가면 부드러운 산세만큼이나 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모두 갱년기를 훨씬 지나버린 사람들, 더 이상 자손을 생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곰솔나무 껍질만큼이나 까칠한 손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의지한다. 문득 불순한 생각이 떠오른다. 저 분들마저 이 땅 위에서 자취를 감추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아직 대보름이 멀리 있지만, 제법 센 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부여잡고 흔들어 제낀다. 곰솔나무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춤을 추기 시작한다. 솔바람 소리가 무슨 백제의 넋두리처럼 스산하다. 눈을 들어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흰구름이 은적산 능선을 염소 떼처럼 무리 지어 넘어온다. 그러나 양장리 와우등 곰솔가지 사이로 바라본 백제의 겨울 하늘 어느 곳에도 솔개는 보이지 않는다.<계속>
글/사진=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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