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마을 수호신 이팝나무… 벼락 맞고도 ‘건재’


어느 마을에 가나 마을 초입에 우뚝 서 있는 당산나무를 볼 수가 있다. 보통 백년이 훨씬 넘는 수령을 갖고 있는 이 당산나무는 그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짐작하게 해준다. 당산나무가 없는 마을은 웬 지 썰렁해 보이고 가벼워 보인다. 누군가 한 알의 씨앗을 심어 가꾸었겠지만 세월이 더해지면서 아름드리가 된 이 나무는 온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종국에는 신앙의 대상이 된다.

하늘의 선한 기운이 이 목신(木神)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 신령스러운 나무에게 당산제를 모시면서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한다. 그 동네 사람들뿐만 아니라 당산나무를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경외심을 갖게 된다. 이 어른 나무를 함부로 다루거나 손상시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민족정기를 훼손하기 위해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제조차도 이 당산나무만큼은 어찌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디어낸 고목은 스스로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 그 덕스러움과 신령스러움으로 인하여 신성불가침한 영역으로 존속할 당위성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모정마을 서재의 이팝나무

▲ 모정마을 서재 월인당에 위치한 수 백년 된 이팝나무. 80년 전 벼락을 맞아 반파되었지만 아직도 5월이 되면 쌀밥처럼 하얀 꽃이 탐스럽게 피어난다. 올 여름 영암군에서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선정하여 전체적인 보수를 하였다. 이팝나무 전설과 관련한 설명을 해놓은 해설판도 설치해 놓았다.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산나무의 종류는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이다. 이 중에서도 느티나무가 가장 많다. 모정마을에도 수 백 년 된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여러 그루 있고 그 중에서 알춤사장의 느티나무와 원풍정 팽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다른 마을과는 달리 모정마을에는 당산나무로 이팝나무가 심어져 있다. 울춤사장과 서재(서쪽 언덕)에 각각 한 그루씩 있는데, 그 중에서 서재 이팝나무가 훨씬 수령이 많고 오랫동안 당산나무로서 동네 사람들의 추앙을 받아왔다.

80년 전 벼락을 맞아 일부 훼손되기 전까지만 해도 당산제를 모시던 터였다. 조선시대에는 이 이팝나무를 아무나 심을 수가 없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에는 평민이 함부로 이팝나무를 심으면 역모를 꾀할 마음이 있는 것으로 의심받아 관가에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일정한 벼슬을 하거나 덕망 있는 선비만이 심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팝나무가 있는 곳은 선비가 살았던 터라고 알려져 있다. 이팝나무는 또 효(孝)와 관련된 전설을 갖고 있는 나무이다. 사효자(四孝子)로 널리 알려져 임금으로부터 효자문(세현문)을 하사받은 마을답게 당산나무로 효를 상징하는 이팝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스토리 텔링’ 관광자원 활용
한편 영암군에서는 이 벼락맞은 이팝나무를 ‘스토리 텔링’ 자원으로 선정하여 나무 주변을 보수하고 다음과 같은 설명이 들어있는 해설판을 세웠다.

모정마을 서재 월인당에 위치한 수 백 년 된 이팝나무는 원래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조선시대 중기까지만 해도 현재의 마을 앞 들녘은 바닷물이 오가는 갯벌이었다. 그 당시에 이 이팝나무는 배 줄을 묶어놓는 지줏대 역할을 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동네 사람들의 쉼터역할을 했다. 나중에 나무가 커지자 마을사람들은 이 이팝나무를 동네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받들어 모셨다.

원래 이팝나무는 효(孝)와 관련된 전설을 갖고 있지만, 하얀 꽃의 모양이 먹음직스러운 쌀밥과 닮은 까닭에 쌀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풍습과도 연관을 맺게 되었다. 농부들은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게 피면 그 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5월 중순 경에 꽃이 만개하는데 쌀밥처럼 하얀 꽃이 점차 시들어 가면 때맞춰 보리가 익기 시작한다.

당산나무로서 마을사람들의 추앙을 받던 이 이팝나무는 1930년 대 여름에 갑작스러운 벼락을 맞아 반파되고 말았다. 당시 ‘해전하네’라고 불리는 동네 할아버지(하네)는 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가 벼락이 치는 바람에 귀를 먹고 말았다.

또한 나무가지에 매달려 목청껏 소리를 뽐내던 수 십 마리의 매미들도 벼락을 맞아 우박 쏟아지듯 우수수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한다. 비록 80년 전에 벼락을 맞아 웅장한 형태를 많이 잃긴 했지만 아직도 5월이 되면 밥그릇에 수북하게 담긴 쌀밥처럼 하얀 꽃이 풍성하게 피어 마을의 풍년을 예언해주고 있다.

특히 월출산에서 떠오른 보름달의 환한 달빛이 만개한 이팝나무 꽃과 어우러지는 날이면 소나무 가지 위에 쌓인 함박눈을 떠올리게 한다. 월인당에서는 이 시기에 맞춰 ‘이팝나무꽃 달빛차회’나 ‘작은 음악회’와 같은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나무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게 큰 이팝나무는 전국에서도 드물다고 한다. 남아있는 나무둘레로 판단하건데 수령도 대략 400년 이상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벼락을 맞지 않았다면 천연기념물로 손색이 없는 나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팝나무의 전설에는 <효행을 주제로 한 것>과 <며느리 구박과 가난을 주제로 한 것>이 있다. 여기에서는 모정마을이 효행(孝行)과 덕행(德行)의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기에 효와 관련된 전설을 소개한다.


이팝나무 꽃의 전설
▲ 꽃이 만개한 이팝나무. 꽃이 좋으면 풍년이 온다고 전해진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산골에 한 가난한 나무꾼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서 식사도 잘 못하고 누워 지내셨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얘야, 흰 쌀밥이 먹고 싶구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식사를 하시겠다는 말씀에 너무 반가워 나무꾼은 바로 “예,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얼른 밥 지어 올게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부엌으로 나온 나무꾼은 쌀독에 쌀이 조금밖에 남지 않은 걸 보고 걱정이 태산 같았답니다.

“어떡하지, 내 밥이 없으면 어머니가 걱정하실 텐데. 아니, 나 먹이려고 잡수시지 않을지도 몰라.”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옳지, 그렇게 하면 되겠다.” 나무꾼은 빙그레 웃으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나무꾼은 마당에 있는 큰 나무에 올라가 하얀 꽃을 듬뿍 따서 자기의 밥그릇에 수북하게 담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밥그릇에는 흰 쌀밥을 담아 들고 들어갔습니다. “어머니, 진지 드세요.” “오냐, 하얀 쌀밥이 먹음직스럽구나.”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계시던 어머니는 오랜만에 흰 쌀밥을 맛있게 잡수셨습니다. “어머니, 정말 맛있어요.” 흰 꽃밥을 먹으면서도 어머니가 오랜만에 맛있게 식사하시고 만족해하시는 걸 본 나무꾼은 너무 기뻐 큰 소리로 웃었고, 아들이 웃자 어머니도 덩달아 웃으셨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임금님이 가난한 나무꾼 집에서 모자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아니, 저렇게 가난하게 보이는 집에서 도대체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저렇게 웃음소리가 크게 들리는고?” 궁금하게 여긴 임금님은 신하들을 시켜 그 연유를 알아오게 하였습니다.

나중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임금님은 그 나무꾼의 효행(孝行)에 크게 감동하여 큰 상을 내렸답니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꽃이 쌀밥(이밥)을 닮은 그 나무를 이밥나무(이팝나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글/사진=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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