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 일 (·재경영암낭주중 총동문회장 ·본지 서울지역 기자)


내 고향, 영암은 우리나라 남단 목포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전남의 한 행정 군이려니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살펴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정감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첫째, 호남의 소금강산이라고 불리는 국립공원 월출산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섬세한 기암괴석으로 물찬 제비처럼 애리한 산새로, 잘난 척 멋을 풍기면서 거만하게 영암을 상징하며 좌정하고 있다. 거기에다 행여 이 세상 어느 한구석이라도 영암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까봐, 국민가수 하춘화가 고향노래를 반세기에 걸쳐 목이 마르도록 불렀으니 온 국민이 자기네 형제간 생일은 몰라도 내고향 영암은 다들 알 것으로 생각된다.

이토록 유명해진 내 고향 영암은 탁월한 행정력을 지닌 군수님의 지휘아래 전 공무원이 단결하여, 갈고 닦으니 아름답고 살기 좋은 우리영암이 될 수밖에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구나 선사시대로부터 내려온 많은 유적과 유물, 도선국사와 왕인박사, 낭산 김준연 선생 등 인물자원까지 내 고향 영암의 품격을 높여준다.

최근에 나는 우리고장의 인물 하춘화씨가 책 출판기념 및 소장품전시회를 연다기에 가보았다. 역시, “대형 가수로구나”하는 느낌이 한눈에 들어왔다. 장소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아담한 곳에 방송국 카메라들이 와있고, 관람객인지 팬들인지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를 하나씩 손에 들고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주인공이 우리 영암가수인데 “왜? 이런 장면을 나만 혼자 보고 있단 말인가”하고 아쉬웠다. 한쪽에 설치된 대형 TV화면에는 하춘화씨가 노래하는 여러 가지 동영상이 하루 종일 돌고 있었다. 이런 것을 우리군민들은 못 본 것이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워서 고함이라도 질러 화를 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춘화씨와 한 고향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고, 우쭐해지기도 했다. 소장품 등을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하춘화씨 아버님이 오셨다고 해서 정중히 인사드리니 인자하신 미소로 대해주며 자리를 권한 뒤 여러 가지 설명도 해주셨다. 집에 있는 소장품이 더 많다고 하시면서, “우리고향 분들이 이런 장면을 못 본 것이 몹시 아쉽다”고도 하셨다. 순간 나는 우리고향 영암에다 ‘하춘화 기념관’을 만들어 꾸며놓으면 우리 영암만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 볼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겸해서 하춘화 노래비를 세워 ‘영암 아리랑’을 상시적으로 관광객에게 틀어주고 우리영암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한다고 생각해보았다. 홍보를 위해선 모든 자원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영암만이 가지고 있는 자원이라고 생각하니 더없이 자랑스럽고, 그래서 그것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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