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만 ·영암신문 삼호읍 명예기자


유희춘(1513~1577)과 송덕봉 부부는 의기(意氣)가 상통(相通)하는 오랜 벗처럼 사이가 여간 좋았다고 한다. 어느 해 겨울, 유희춘이 승지(承旨)의 벼슬에 있을 때, 궁궐 안에서 숙직으로 엿새나 집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는 모주(母酒) 한 단지를 아내에게 보내면서 시 한수를 덧붙였다.

雪下風增冷(설하풍증냉) 눈 내려 바람 더욱 차니
思君坐冷房(사군좌냉방) 냉방의 당신 모습 생각났다오.
此酵雖品下(차효수품하) 이 술이 품질은 변변치 않으나
亦足煖寒腸(역족난한장) 찬 속을 덥히기는 충분하리다.

이에 아내 송덕봉도 남편에게 답시를 보냈다

菊葉雖飛雪(국엽수비설) 국화잎이 눈발에 날린다 해도
銀臺有煖房(은대유난방) 은대에는 따스한 방이 있으리.
寒堂溫酒受(한당온주수) 추운 집에서 따뜻한 술을 받들어
多謝感充暘(다사감충양) 고맙게도 뱃속을 채웠답니다.


대궐 숙직 중에 생긴 모주단지 하나를 아내 몫으로 챙겨 시와 함께 보내준 남편과 그 술을 마시고는 그 자리에서 사람을 세워놓고 몇 줄 시를 엮어 보내는 아내, 서로에 생긴 깊은 이해와 사랑과 따스한 배려가 모주의 부드러운 술맛처럼 은은하게 엿보인다.
술을 보내는 유희춘 마음도, 술을 마신 송덕봉의 마음도, 이 풍경을 상상하는 우리의 마음도 모두가 흐뭇하지 않을 자 누구 있겠는가? -이승수의 ‘문학속의 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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