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근(본사 대표이사·발행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전국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마치 지난 2004년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맞선 촛불시위가 온 나라에 넘실대듯 말이다.

서거 엿새째인 28일 추모인파가 생가인 봉하마을에만 100만명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그 숫자가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비록, 추모행사엔 참여는 못했지만 진심으로 마음속 깊이 애도하는 국민들이 헤아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팔을 걷어 부친 자원봉사자가 넘쳐나고 전국에서 몰려든 추모행렬은 끝이 없다. 마치 자신의 부모를 잃은 것처럼 목 놓아 통곡하는 이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자칫 관심 밖으로 밀려날까 우려됐던 메가톤급 북한의 핵실험 소식도 결코 국민들의 추모열기를 꺾진 못했다.

과연 왜 모두가 그토록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아파하며 오열하고 있는가. 도대체 노무현의 마법(魔法)은 무엇인가. 그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전직 원수라서 그럴까.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의 죽음에 국민들이 그처럼 오열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 해법은 노무현의 삶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삶이란, 참으로 모진 것이었다. 지름길이 있었지만 애써 돌아가는 그의 삶은 자신의 말대로 운명이었다. 요령 피우지 않고 기회를 거부하며 살았던 그는 억압받고 소외받았던 서민들의 진정한 대변자였다. 성장과정에 드리운 가난의 그림자는 나중에 그가 대통령이 돼서 ‘정직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표출된다.

2003년 2월 25일. 3김 시대의 종언을 고하며 불운했지만 화려하게 부활한 대통령 노무현은 취임사에서 자신의 의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하며,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돼야 한다. 원칙을 바로 세운 신뢰사회,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취임사에서 밝힌 강한 그의 의지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심금을 울렸고 동시에 희망을 안겨줬다. 대통령제 하의 막강한 권한도 스스로 내던지며 권위주의를 청산했던 그의 결단은 국민을 주인으로 모셨던 진정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취임 초부터 개혁 대상으로 지목한 검찰, 언론, 재벌은 임기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때문에 그는 대통령이 됐지만 끊임없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보수안정 세력들의 기득권 유지에 힘입은 이들의 조직적인 반발은 ‘혁명보다 개혁이 어렵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간 첫 대통령이 됐지만 역시 그들은 가만 놔두질 않았다. 마치 정글의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고 즐기더니 죽음에 이르자 돌변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바보 노무현’은 바보스럽게 죽었지만, 오히려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역사에 남고자 했던 그의 부단한 노력들이 이제야 재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업적은 그만두고서라도 그의 삶에서 찾은 ‘인간성’은 초등학생들까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추모행렬에 동참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의 마법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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