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면 와우리 산 37-89번지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으로 우정마을의 남쪽과 남동쪽에 있는 구릉상에 2개 군을 이루고 있다. 1986년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일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고분군은 가군에 6기, 나군에 5기가 분포하고 있으며 이중 가군의 1, 6호분과 나군의 1호분 등 3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이들은 모두 봉토가 남아있지 않거나 낮고 작은 고분이 있었는데 옹관유구는 각각 독립되어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한 봉토 안에 1기의 옹관구조만 조사되었는데 옹관은 모두 합구식으로 수평으로 횡치되어 있었으며, 가군의 옹관은 대소형 모두 尾部에 원형의 돌기가 있는 古式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나군의 1호 옹관은 음각선문이 돌려진 것이었다. 또 옹관이 들어갈 토광을 파서 옹관을 안치한 후
1970년대 시종면 청사'영암의 북쪽 첫머리' 라는 의미로 북이시면(北二始面)으로 불렸던 시종면은 원래 나주군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4월 1일 군면 통폐합에 따라 영암군으로 편입됐다. 북이시면과 종남면의 첫 글자를 따 시종면으로 불리고 있다. 건물 뒤쪽으로 '간첩자수 및 신고 강조기간'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2000년대 시종면 청사14개리 70개 자연마을로 이뤄진 시종면은 영산강개발사업에 의한 간척공사와 야산개발로 산지보다 많은 전형적인 평야지역으로 시설원예가 발달돼있다. 내동리 쌍무덤이 있는 시종면은 마한문화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청사에 '세계로 도약하는 새영암 건설'이 활기차 보인다.
삼국시대 고분으로 장동마을 북서쪽 구릉상에 3기의 고분이 분포한다. 방대형 고분은 도로변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주민들은 ‘동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방대형고분(1호분)은 민가와 접한 남평문씨 문중산에 있으며 복원 정비된 상태인데 옥야리 일대의 고분들 가운데 규모나 분구형태에서 으뜸이 되는 고분이다. 규모는 밑변 길이 38m, 폭 35m의 방형 평면에 높이 5.5m로 축조되었다. 상단부는 윗변 길이 18m, 폭 16m의 방형으로 축소되면서 방대형을 이루고 있다. 즉 단면상으로는 梯形을 이루고 있는데 분구의 형태가 가장 정연하게 유지되어 있다. 2호분은 1호분에서 남동쪽으로 50m 거리를 두고 위치한다. 형태는 방대형분이다. 3호분은 소형의 원형분이다. 봉분은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민묘 조성 등으로
1980년대 학산면 독천세발낙지로 유명한 학산면 독천. 전남 서남부권의 교통 요충지로 외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던 이곳은 우시장까지 갖춰져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비록 허술한 건물이었지만 북적거렸던 시장통이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2000년대 학산면 독천말끔하게 단정된 도로와 건물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옛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독천은 영암군의 대표적인 음식명소로 주말이면 관광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져 타 읍면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산마을의 남서쪽에 신산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 남쪽으로 낮은 구릉이 남해포로 가는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S자 형태로 뻗어있다. 고분군은 구릉의 정상부를 따라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5기가 분포한다. 현재는 구릉의 대부분이 개간되었고 저수지 남쪽구릉만 야산으로 남아 있다. 이 고분군은 옥야리 고분군과 동일한 구릉을 따라 분포되어 있으나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관계로 편의상 구분하였다. 1호분은 고분군 가운데 맨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규모면에서 가장 큰 방대형 고분이다. 봉분의 정상부는 평탄하고 도굴갱이 확인된다. 도굴갱 내에는 판석이 노출되어 있어 석실이 파괴된 듯 하다. 2호분은 1호분과 100여m 거리를 두고 있다. 봉분의 북쪽 아래에는 “嘉善夫夫戶曺參判光由盧()官墓”가 있다. 봉분은 원
1960년대 덕진면 영보리1960년대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풍경이 정겹다. 지금은 구경조차 힘든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촌락을 형성하고 있는 덕진면 영보마을 전경. 2000년대 덕진면 영보리1970년대 취락구조 개선사업이 한창 진행되어 농촌의 주택은 슬레이트와 기와 또는 이태리식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볏짚도 지금은 쓸모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삼국시대의 이 고분군은 남해포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28기가 분포한다.이중 6, 14호분이 1990년 목포대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다.6호분에서는 4기의 옹관과 후대의 민묘 2기, 그리고 구덩이 1개가 조사되었다. 매장 주체시설은 모두가 봉토내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지상식으로 축조되어 있었다.분구의 형태는 장타원형이고 분구자락에는 도랑이 돌아가고 있었다.14호분은 생토를 일부 파고 하나의 옹관을 안치한 후 봉토를 쌓은 단독정으로 소형분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2기 모두 도랑이 확인되어 도랑은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밝혀졌다.또한 토성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도 옹관이 노출되어 매장시설임이 밝혀졌다.특히 추정 토성트랜치에서 확인된 옹관은 전용옹관의 주옹관을 일상용
1970년대 영암읍 5일시장 입구 사거리도로 옆으로 단층의 기와집이 상가를 이루고 초가집도 눈에 띈다. 상가 건물 너머로 월출산의 모습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정겨움을 더해준다. 2000년대 영암읍 5일시장 입구 사거리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현대식으로 지어진 상가 건물이 예전과는 달리 깔끔해 보이지만 정겨움은 덜한 것 같다. 월출산도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삼국시대 고분으로 시종면 신연리 뒷모실 마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민가와 인접하여 군집하고 있다. 신연리 고분군 15기 중 9호분은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1995년 8·11·12·14·15호분, 1996년엔 9·10·13호분에 대한 시굴조사가 이뤄졌다. 9호분은 고분군의 복원정비를 위한 기초자료를 얻기 위해 발굴된 것으로 분구의 형태는 방대형으로 봉분자락에 도랑을 돌렸다. 분구내에서 토광묘 3기, 옹관묘 4기의 유구가 확인되어 토광묘와 옹관묘가 공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분구의 자락으로는 도랑을 파 돌렸는데 모서리 부분보다 가운데를 더 깊게 팠으며 도랑을 파면서 나온 흙을 성토하는데 이용함으로써 작은 노력으로 분구의 거대화를 꾀한 의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 고분도 만
1956년에 촬영한 한 가족사진의 모습.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와 자식 등 3대가 함께 다정하게 자리한 이 가족사진은 덕진면 금산마을에서 촬영했다. 지금은 모두가 고인이 되었고 가장 어린 손주만 생존해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양만장으로 변신한 전분공장 농산물 가공공장으로 어려웠던 시절 농가소득에 크게 기여했던 덕암전분공장은 6년만에 문을 닫고 양만장으로 탈바꿈했다. 1973년부터 장어를 키우고 있는 이 양만장은 초창기 일본에 주로 치어를 수출해오다 지금은 국내 소비용으로 성만을 식당등에 대량 공급되고 있다. 정문입구에 '덕암양만장'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1970년대 구림 사거리 구림의 중심지로 신근정 4거리 일대에 상가지역이 형성됐지만 1970년대 무렵만 하더라도 상가들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었다. 우체국, 지서, 농협, 정류장 등이 있고 도갑사로 통하는 진입로가 있어 상업기능이 일찍이 발달된 곳이다. 인제약방과 비포장도로의 모습이 새롭다. 2000년대 구림 사거리왕인박사 유적지와 함께 전통마을 구림이 영암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가꾸어지면서 신근정 4거리도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넓게 뚫린 포장도로와 잘 정돈된 상가건물은 관광촌으로 새롭게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영암읍 전경월출산 자락에 있는 영암읍 전경.바다와 인접한 서남부 지역과는 달리 육지부와 접해있는 영암읍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국도 13호선과 819호선을 중심으로 소도읍을 형성하고 있다. 2000년대 영암읍 전경월출산에서 바라본 영암읍 전경.한때 미나리를 키우기도 했던 영암여중고 부근의 방죽이 지금은 공설운동장으로 변모했고, 군데군데 들어선 아파트와 새로 개설된 도로가 예전과 달리 눈에 뛴다.
나주시 반남면 소재지에서 821번 지방도를 따라 달지마을 입구의 제1저수지를 100여m 못미쳐 도로 우측의 야산에 5기의 고분이 있다.봉분은 5기 모두 거의 남아있지 않을뿐만 아니라 소나무가 우거져 자세한 규모는 알 수 없다.
1967년 10월 15일 영암군청사 앞에서 제17대 영암군수로 재직하다 이임하는 고화현 군수의 송별기념 사진. 고 군수는 1966년부터 1967년 10월 14일까지 11개월간 재임했다. 중앙 현관의 ‘한해민 구호 궐기의 달’이라는 구호가 당시 극심했던 한해를 짐작케 한다.
1964년 6월 23일 영암군청사 앞에서 제14대 영암군수로 재직하다 이임하는 박남칠 군수(맨 앞줄 가운데 양복차림)의 송별기념 사진. 청사 현관문 앞에 붙여진 ‘반공사상 계몽 및 간첩자수기간’의 플랑카드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군서면 도갑사 입구에 최근 만발한 유채꽃이 월출산과 조화를 이뤄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영암군은 이곳에 54ha의 유채꽃 단지를 조성, 탐방로 개설과 포토존을 설치해 5월 10일까지 개방하여 군민과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