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웅 ·군서면 서구림리 출생·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강사·계간 문학춘추 편집인·주간·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현)·전라남도문인협회 회장(현)
첨단 인쇄술의 발달로 출판이 아주 쉬어졌다. 누구나 맘만 먹으면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금방 책을 펴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출판기념회가 자주 열린다. 종철이는 수필 동호인이다, 학교 동창이다, 직장 동료다, 일가친척이다 뭐다해서 한 달에 두어 번꼴로 출판기념회에 다녔다. 그럴 때마다 살짝 짜증이 났다. 주말을 망친다거나 축의금을 들고 다녀야 하는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종철이를 짜증나게 하는 것은 식순이다.

보통 출판기념회 식순은 인사말, 축사, 작가 약력 소개, 작품세계 등이지만 이는 목록만 그럴 뿐이지 단상에 오르는 사람은 인사말 한다해 놓고 작가소개를 하고, 축사를 한다해 놓고 작품 평을 함으로써 인사말이건 축사건 작가소개건 작품세계건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연설내용이 똑같다 것이다. 그러니까 똑같은 말을 녹음기 틀어 놓은 것처럼 너댓 차례 반복해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 평소 별로 진한 인간관계도 없어 보이는데 무슨 정부에 높은 벼슬아치나 재벌회사 사장 또는 문학단체의 장 등을 모셔와 그들에게 축사, 작가소개, 주례사비평 등을 부탁함으로써 은근히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철이는 왕짜증이 나는 것이다.

종철이는 올해로 회갑을 맞았다. 옛날처럼 회갑잔치도 할 수 없고 그냥 보통 생일처럼 넘기기도 뭣하고 마누라 직장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흔히 하는 회갑기념 해외여행도 쉽지 않은 판에, 명색이 수필가라는 허명을 핑계 삼아 아이들의 주선으로 회갑기념 수필집을 내놓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애들이 출판기념회를 하자고 조르는데 있다. “아버지, 그래도 회갑인데 어떻게 책만 내고 말아요. 가까운 몇 분이라도 모시고 회갑잔치 겸 출판기념회를 해요.” 특히 큰놈이 바드득 졸라댔다. 종철이는 참으로 난감했다. 자식들의 말도 맞고, 자신도 이제, 언제 책을 또 내랴싶어 출판기념회를 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왕짜증을 내게 할 생각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종철이는 며칠 밤을 고민하다가 출판기념회를 하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식당을 예약하고 출판기념회 초대장을 쓰기 시작했다.

수필집 ‘아니면 말고ㅡ’ 출판기념 및 김종철 회갑잔치 초대장

1. 때 : 2007. 9. 12
2. 곳 : 영암신문사 구내식당
3. 초대 말씀

제 출판기념회는 조금 다릅니다. 그야말로 시골 동네잔치를 벌리듯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초청장을 받고도 그날 선약이 있거나 한나절을 할애하지 못하실 분들은 굳이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외려 잠깐 얼굴 도장만 찍고 가시는 분을 더 야속하게 생각하렵니다. 또 축의금, 화환 등을 비롯, 출판기념과 관련한 어떤 것도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기어코 들고 오신 분에게는 저를 진정 몰라주는 분이라고 크게 화를 내며 즉석에서 반품할 것입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식순에 보다시피 인사말이고 작가소개고 축사고 작품세계고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한 잔하며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하다가 얼근해지면, 제 수필집 이야기나 제 회갑 이야기를 살짝 곁들이는 정도로 한나절을 즐겁게 보내고 싶습니다. 다만, 유념하실 것은 여러분이 매기는 상품가치와 관계없이 제 수필집이 출판되어 나온 이상, 책값은 꼭 받을 것입니다. 한권 당 7천원입니다. 외상도 당연히 안 됩니다. 또 두 권을 가져가시더라도 할인 없이 1만4천원입니다. 전람회에서 그림을 사거나 음악콘서트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이치와 똑 같습니다. 비록 삼류일지라도 저는 분명 문단에 등단한 작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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