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45> 무안의 마한(하)

무안 고절리 고분(왼쪽 사진)은 처음 옹관이 사용되던 시기에 나타난 대용 옹관이 옹관묘 다음 시기의 석곽분이나 석실분과 함께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고분군은 영산강식 토기의 대표 격인 유공광구소호를 비롯 개배·고배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무덤의 피장자는 이곳에 뿌리를 내린 마한의 토착세력으로 추측된다. 오른쪽은 무안 상마정 고분 출토유물.

마한축제 취소보다는 대안 마련을

2020년 세계를 공황에 빠뜨린 코로나19로 인해 현대인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 우리에게 생소한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었고, 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하고, 코로나 확진 환자는 물론 직·간접 접촉자도 자가 격리, 동선 공개 등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지향한 개인 생활보호 등을 일정 부분 유보해야 하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현재 ‘K방역’이라 해서 세계 1위 방역 모범국가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러한 K방역의 성공은 헌신적인 의료인력과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정보 및 신체적 통제를 일정 부분 양보하는 사회적 합의가 암묵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마한 이래 부족 단위별로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전통의식이 형성되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코로나19는 이미 우리에게 일상으로 다가왔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백신을 만들어 이겨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나 방역수칙을 지키며 정상적인 삶을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축제, 각종 대회 등 시민, 학생 등 대규모 사람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를 온라인을 통하는 방법으로 전환하는 등 새로운 모델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마한사 특별법 제정의미를 기억해야

이러한 상황에서 나주와 영암에서 해마다 추진하였던 마한축제가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하기로 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2020년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 마한을 포함시킨 역사문화권 정비특별법이 제정된 해이다. 이른바 마한 특별법으로 마한사 발굴, 조사, 연구, 보존과 관련하여 체계적인 작업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 특별법은 2021년 6월부터 본격 추진된다고 입법예고가 되어 있어 관련 사업방향을 체계적으로 준비함과 아울러 우리 지역민을 포함한 전 국민이 마한사에 관심을 가지도록 붐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한 해이다. 전라남도가 11월 서울에서 마한 관련 행사를 대대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나주와 영암에서 마한 관련 축제를 올해 취소한 것은 아쉬움이 많다. 대규모 시민이 참여하는 행사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온라인을 이용한다든가, 행사 참여 인원을 분산시키는 방법을 통해 마한의 역사성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장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한 특별법이 제정된 올해 관련 행사를 완전 폐지하였기에 안타까움이 남는다.

무안은 지난 호에 영산강 입구에 있는 몽탄 지역과 서해안에 위치한 해제 반도는 같은 마한 문화권이었다는 사실을 몇몇 유적·유물을 통해 확인하였다. 나머지 출토 유적·유물을 통해 마한 시대 이 지역의 특징을 확인하여 보기로 하겠다.

무안지역이 영암보다 발굴조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까닭은 서해안고속도로와 목포-광양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된 구제 발굴 때문이었다. 발굴 보고서를 하나씩 보면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유적 가운데 눈에 띄는 유적은 무안군 몽탄면 학산리에 있는 인평고분이다. 이 고분군은 토광묘 3기, 옹관 6기, 석곽 9기, 석실 1기 등 3~6세기 마한시대의 집단고분군과 주거지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유적이다.
 
고절리 고분, 신창리식 옹관 출토

고절리 고분의 발달 순서로 보면 토광묘-옹관-석곽-석실로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호형토기, 철도자, 철촉, 철겸, 고배, 개배, 옥류 등 출토되었다. 출토유물 가운데 철도자, 철촉, 철겸 등 철제류와 옥류 등이 나왔다고 하는 것은 고분의 피장자가 지역의 유력한 세력가임을 짐작하게 한다. 아울러 한 곳에서 각 시기를 대표하는 고분이 차례차례 출토된 것은 이곳이 수백 년에 걸쳐 토착세력이 공고히 뿌리내려져 있음을 알려준다.

이 가운데 특히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다른 고분 형태보다 옹관묘에 관해서다. 이곳에서는 신창리식 옹관묘를 비롯하여 대형 옹관묘 5기가 확인되었다. 신창리식 옹관 형식을 띤 1호분은 무문토기와 단면 삼각형 점토대 토기를 사용한 합구식으로 전체 길이 90cm 정도다. 신창리식 옹관은 옹을 관으로 사용한 최초의 형식으로, 광주 신창동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이 양식이 영암 선황리 출토 옹관에서 모습을 보여 신창리식 토기의 전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라고 앞서 얘기를 한 바 있다.
 
신창리식 옹관-고절리-선황리 이어가

그 신창리식 옹관이 인평 고분에서 확인되고 있다. 인평 고분과 선황리 고분은 약 35km 떨어져 있다. 거리를 놓고 보면 인평 고분은 광주 신창동 고분과 영암 선황리 고분 사이에 있다. 선황리 옹관과 인평 고분 옹관의 신창리식 옹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시기가 빠른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평 고분의 것이 무문토기와 단면 삼각형 점토대 토기를 사용한 것으로 볼 때, 신창동에서 출토된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본다면 신창동에서 처음 나왔던 신창리식 토기가 몽탄의 인평 고분을 거쳐 선황리로 전파되어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산강 내해로 진입하는 입구에 있는 몽탄은 내륙문화와 외래문화가 교류하는 초입에 위치하여 기존 문화를 고집하기보다 새로운 문물과 융합시켜 녹여내는 능력이 탁월하였다. 신창리식 옹관을 받아들이고, 다른 곳으로 전파시키는 데에서 이러한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이 지역에 시기별 묘제의 특징이 일정하게 나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 하겠다.

인평 고분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무안 고절리 고분은 처음 옹관이 사용되던 시기에 나타난 대용 옹관이 옹관묘 다음 시기의 석곽분이나 석실분과 함께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이 고분군은 방형분으로 규모가 남북 37m, 동서 길이 38.7m, 높이 3.8m의 대형고분에 속한다. 매장 주체는 석곽묘와 옹관묘가 확인되는데, 호형토기, 병형토기, 유공광구소호, 개배, 고배 등이 출토되었다. 영산강식 토기의 대표 격인 유공광구소호를 비롯하여 개배· 고배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무덤의 피장자는 이곳에 뿌리를 내린 마한의 토착세력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인평 고분, 초기 대용 옹관의 형식

이곳에서 확인된 옹관묘는 경질의 대옹을 매장용으로 사용하였다. 전용 옹관이 아닌 대용 옹관은 3세기 이른 시기부터 출현하여 전용 옹관이 성행하는 시기에 이르러서도 병행하여 사용되었으나 전용 옹관에 비해 확인된 예가 많지 않다. 석곽묘나 석실분이 성행되는 시기에 조영된 대용 옹관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던 고절리 옹관은 구연부 형태가 발달되었고 동체부의 문양 형태도 대옹에는 접선문이, 소옹에는 격자문이 타날되어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영산강의 입구에 위치한 몽탄과 그 인근에서 세력을 형성한 토착세력은 오랫동안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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