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낭주골
새해 단상(斷想)
정 희 봉

학산면 계천길
문화유산해설사·전통건축 해설사
영암군문화관광해설가

2020년 경자년 흰쥐띠 해, 오방색 중 진실하고 순결한 흰색과 같이 단순하지만 같은 숫자의 리듬이 반복되는 해, 신정과 구정이 같은 달에 있어 왠지 좋은 일만 있을 거 같고, 무슨 일을 해도 다 이루어질 것 같은 기운이 솟는 새해이다.

설은 말 그대로 새해의 첫날을 뜻하는 날로, 신정은 양력 1월 1일, 구정은 음력 1월 1일을 의미한다. 신정(新正)은 양력 1월 1일인 양력(陽曆)설을 가리키는 말이며 구정(舊正)은 음력(陰曆)설을 가리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무심히 넘겨왔던 신정과 구정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가 지내왔던 시간의 흔적들만큼 아쉬움과 즐거움,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음력 1월 1일을 새해의 첫날로 여겼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 풍속을 없애기 위하여, 1872년 메이지 유신이후 서구화를 통한 근대화를 목적으로 태양력을 따랐던 자신들처럼, 음력 1월 1일 설날 쇠기를 금지하고 자신들의 문화와 동일하게 양력 1월 1일을 명절로 지낼 것을 강요하였다.

일본은 양력 1월 1일을 새롭고 진취적인 설이라는 뜻의 '신정'이라 불렀고, 음력설은 오래되어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 ‘구정’으로 부르도록 강요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력설을 고수하고 명절로 지내왔으며, 결국 음력설을 양력설로 전환하는 데 실패해서 오히려 음력설과 양력설 두 차례에 걸쳐 설을 지내게 되었다. 신랑은 어릴 적에 신정에는 방앗간에 갔던 기억은 없고, 구정에는 방앗간에서 새벽까지 줄을 서서 떡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한다. 일본이 음력설을 폐지하고자 했던 노력과 이후 정부 정책에 의한 구정 문화의 희석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정문화가 없어지지 않자, 다시 구정을 공식적으로 부활시키게 되었다. 사람들의 일상에도 전통적인 구정 문화의 정취가 남아 있어, 우리네 마음속의 새해 첫날은 음력설인 구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의미인 한 해의 시작이지만, 아이들과 부모 간의 기억들과 그 부모의 부모 간의 기억들, 세대에 걸친 그리움들이 엮이어 음력 설을 기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맛있는 음식과 아버지와 설빔 옷과 연분홍 구두를 사는 때도 구정이었고, 눈이 커다란 인형과 예쁜 카드를 기대할 수 있었던 때도 신정이 아닌 구정이었다.

2018년 지인의 초청으로 폴란드에서 3개월을 지낼 수 있었다. 지냈던 곳은 폴란드 남부지방으로 독일과 체코에 가까운 브로츠와프라는 도시이다. 보통은 밀크바에서 식사와 차를 마시며 식구와 모임을 갖거나 친구들과 어울린다. 사회주의를 겪고 나서 그런지 술집은 거의 없고, 밀크바라고 하는 건전한 사교장소가 많다. 연말연시를 그곳에서 보내면서 폴란드인의 풍습과 가정식을 접할 기회가 생겨 더없이 좋았다.

마지막 날 현지인의 저녁 초대를 받아 방문하였다. 폴란드인들은 가정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까닭에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서 파티를 한다. 물론 음식도 가정에서 다 준비한다. 우리나라처럼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문화는 거의 없고 대신 대형마트에 가면 우리보다 저렴한 반조리 식품들이 종류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다. 폴란드 가정식은 돼지고기, 양배추,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는 편이며 국수나 폴란드식 과일 푸딩도 많이 먹는다.

가정식 메뉴로는 우리 만두와 비슷한 동유럽 사람들이 즐겨먹는 빵 같기도 만두 같기도 한 피에로기는 감자만 넣어 만들거나 또는 쇠고기나 양배추 절임을 넣어 만든다. 감자를 갈아 만든 감자전도 있고, 전통음식인 비고스에는 고기와 양파, 절인 양배추를 넣고 끓인다. 족발을 삶아서 굽거나 튀긴 골롱카, 그리고 식탁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은 우리의 김치와 같은 양배추 절임과 치즈, 스낵 등이다. 술은 보드카가 주종이고 와인, 맥주, 샴페인도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 7시부터 식사를 시작해서 천천히 느긋하게 자정이 다 될 때까지 긴 저녁 식사 시간이다.

새해맞이는 불꽃놀이로 시작한다. 자정 즈음에 시작하여 약 1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시에서 주관하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폭죽을 사서 집 주변에서 터트리고 이날 만큼은 아이들도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새해맞이 놀이를 한다. 폭죽놀이가 끝나고 나면 집으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계속 새해맞이 축제가 시작된다. 다 같이 웃고 대화하고 춤도 추어 가면서 새해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흥겨운 파티를 한다.

해마다 오는 새해 첫날! 올해는 흰쥐가 오셨고, 그 뒤로는 여러 가지 빛깔로 여러 모습의 십이지신들이 오시겠지만, 항상 새해의 첫날은 왠지 모를 희망으로 기대가 되고 첫날의 아침은 즐겁다.

정희봉  @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