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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극복에 영암인이 중심에 있었다”을묘왜변, 양달사 의병장이 평정해
‘살신성인’ 영암인의 기개 보여줘
영암역사연구회 제8차 학술발표회
  • 서울=서영규 시민기자
  • 승인 2018.02.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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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역사연구회는 지난 6일 ‘국난극복을 위한 영암인의 의병전쟁’을 주제로 한 제8차 학술발표회를 서울에서 가졌다.

이날 발표에 나선 조복전 회장은 ‘을묘왜변과 양달사 의병장을 중심으로’한 부제에서 “영암은 지정학적 특수성과 지리적 환경 때문에 고대에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빛과 그림자가 뚜렷했다”면서 “왜구들이 일으킨 을묘왜변도 국가적 변란 중의 하나인데, 양달사 형제가 영암읍성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구들과 싸워 격퇴시킴으로써 국란을 평정하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 회장은 “당시 왜구는 남해안 일대에 1년에 한 두 차례씩 해적질을 해가는 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없이 악랄했고, 을묘왜변(일명 달량진왜변)으로 달량진성이 함락돼 갖가지 노략질을 하면서 영암까지 쳐들어 왔으나 정부군은 대적하지 못하고 군민들이 불안에 떨면서 실망하고 있을 때, 영암인으로 해남 현감 직을 사임하고 모친의 시묘를 하고 있던 양달사 형제가 영암읍성에서 왜구들과 육박전을 하여 왜구를 격퇴시켰다”고 부연 설명했다.

조 회장은 이어 “영암인은 국란이 있을 때는 이를 평정하기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의병을 일으켜 몸을 바쳐 싸웠다. 그래서 상처 또한 깊고 크다”면서 “을묘왜변 때 보여준 양달사 형제의 사례는 영암인들의 애국충정이요, 기개의 한 사례이다”고 강조했다.

영암읍내 중앙로 오거리 소재 장독골샘은 을묘왜변 때 양달사 장군이 기를 꽂아 물을 솟아나게 했다고 해서 장독샘 또는 장군정이라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을묘왜변은 1555년 명종(10년) 때 왜구가 전라남도 완도, 해남, 진도, 영암 일대에 침입해 약탈과 노략질한 사건이다.

이날 행사에는 양달사 장군의 후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도포지역 주민들을 비롯한 김호중 양백근 전 재경도포면 향우회장, 전석홍 유인학 유선호 김재철 김지평 김선형 김우혁 배용태 박석주 신승현 고광표 문승길 등 많은 향우들이 참석해 경청했다.

서울=서영규 시민기자  yasin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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