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네덜란드 시골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조카딸 영미가 풍경 사진과 함께 소식을 전해왔다. 진즉 학부모가 되었을 나이인데 이제야 유학이라니, 그동안 하던 일은 어쩌고, 학비는? 염려와 함께 “공부는 학교 다닐 때 해야 한다”던 말씀을 되뇌게 한다. 그렇지만 늦게나마 꿈을 이루고 있으니 대견하기도 하다.
무어든 본인의 의지가 먼저다. 살다 보면 성공과 실패가 따르는 거지만, 미련은 결코 내일의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넘을 수 없는 한계상황이 아니라면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도전이 항상 있어야 한다. 평범하지 않더라도, 좀 더디더라도, 바르고 건강하면, 언제든 이루어갈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사라고 본다.
네덜란드는 자연환경이 열악한 나라다. 낮은(Neder) 땅(Lands)이 국호가 될 정도로 북해와 라인강에 접해 국토의 4분의 1이 해면 아래지만, 방조제를 쌓고 간척지를 조성하여 이용을 가능케 했다. 1953년 대홍수를 계기로 배수펌프장과 벨루베메르 수로 등 대규모 델타 플랜까지 완성한다. 오늘날 첨단 기술을 융합한 스마트팜, 축산과 낙농업의 기반이 되며 세계적인 농산물 수출국이 되고 있다.
우리에겐 여러모로 친근하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히딩크(1946~ ) 감독, 안네 일기의 안네 프랑크(1929~1945), 해바라기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1668년 14년 하멜표류기 저자 헨드릭 하멜(1630~1692)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 헤이그, 수도 암스테르담과 풍차, 베네룩스 3국, 즐겨 찾는 하이네켄 맥주로도 유명하다.
1970년대 교과서에 실린 구멍 난 댐을 손으로 막은 소년 영웅담도 있다. 슈파른담 등 긴 제방 위에 동상까지 서 있지만 정작 현지인들은 잘 모른다. 알고 보니 19세기 말 미국 동화에 우리의 애국주의가 결합한 산물이었다. 여하튼, 바닷물을 막은 그들의 상징이 됐고, 많은 한국 관광객이 찾아오며 묻다 보니, 동상을 설치했다는 사실이다.
홀랜드(Holland), 화란(和蘭), 더치(Dutch)로도 불린다. 그렇지만 더치는 일제강점기에 ‘조센진’이라는 것과 같으므로, 안 쓰는 게 좋다. 네덜란드 상징색은 오렌지다. 1581년 종교 자유와 독립을 선언한 오라녜공(orange) 빌럼 1세에서 비롯했다. 그들 축구 대표팀은 오렌지군단이 되었고, 다른 사연도 낳았다. 브라질 노랑, 스페인 빨강, 아르헨티나 하늘색 줄, 우리는 붉은 악마가 되었다.
서구 역사는 고대, 중세, 근대로 나뉜다.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가톨릭 세력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았다. 이슬람이 지중해, 바이킹이 북해와 발트해를 차지하며 암흑의 중세가 된다. 1492년 스페인의 레콩키스타(이베리아반도 회복)와 콜럼버스 대항해 이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르네상스, 산업혁명, 프랑스 시민혁명과 민주주의 출발, 그리고 제국의 시대가 열린다.
스페인 이사벨 1세(1474~1504) 여왕은 이슬람을 추방한다. 30만 유대인도 떠나야 했다. 그들 대부분은 플랑드르 저지대로 이주하며, 브뤼헤와 앤트워프항을 중심으로 중계무역에 종사한다. 17세기 초 동인도회사는 후추, 향신료 등도 취급하며 다이아몬드 세공과 유통까지 독점한다. 당시 세계화는 오늘날 유럽연합 집행부와 나토본부가 벨기에에 들어선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네덜란드인은 진취적이었다. 15C 초 청어가 몰려오자, 100만 인구의 30%가 종사한다. 이렇게 쌓은 자본과 기술로 북방무역의 70%를 장악하며 바다의 마부가 된다. 운임은 반값에 불과했다. 화물칸은 배 불뚝 넓히고 갑판은 좁히며, 승선 인원을 3분의 1로 줄인 것이다. 당시 상선 1만6천 척은 전 유럽을 더한 것보다 많았다. 점차 신용을 얻으며 증권거래소, 은행, 외환거래와 해상보험까지 관장한다. 그 동력은 계절풍이었다. 겨울에는 대륙, 여름엔 대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할 줄 알았다. 항구마다 진기한 물품으로 넘쳐났다.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며, 황제 튤립 한 뿌리가 집 한 채 값일 정도로 투기까지 만연한다. 오래가진 못했다. 10여 년 거품이 깨지자, 빛의 화가 렘브란트(1606~1669)도 빚덩이에 오르고 만다. 그 타개책으로 세운 미술품 경매회사가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뿌리가 된다. 1609년 동인도회사 헨리 허드슨(1570~1611)이 맨해튼섬을 뉴암스테르담(뉴욕)이라 칭한 후, 유대인 중심 서인도회사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만들어 유럽과 삼각무역을 한다. 1642년 아벨 타즈만(1603~1659)은 남반구를 항해하던 중, 한 섬이 고향 질란드와 닮았다며 뉴질랜드(New Zealand)라 명명하는 등 신대륙을 개척해 나간다.
이렇게 온 대양을 누비자, 영국이 꾀를 낸다. 1651년 항해조례를 제정하며 통제한 것이다. 해결 방법은 전쟁뿐이었지만, 네덜란드는 크고 강한 영국 함대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엘리자베스 1세(1533~1603)가 일찍부터 해적질을 지원하며 키운 해군력의 차이였다. 새천년 초 영화 ‘캐리비안 해적’의 모티브다. 해가 지지 않은 나라, 세상의 패권은 영국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 다음은?
현실 한계를 극복한 자가 차지할 것이다. 정치, 경제, 군사, 외교가 따로일 수 없다는 뜻이다. 결코 자중지란, 임시방편으로는 이룰 수 없는 목표다. 개개인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도 필요한 공부, 혜안을 더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