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유혹

2025-11-14     영암신문
모 종 화  학산면 은곡리 석포마을生​​​​​​  전 1군단장(중장)​  ​​​​​​전 병무청장​  ​​경기도 안보자문위원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경기도 북부 지역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기가 깨끗하고 기온이 조금 낮은 지역이다. 11월 들어 경기도 청사 앞에 낙엽이 하루가 멀다고 붉고 노란색으로 변하여 나를 유혹한다. 아침 일찍 떠오르는 햇살 사이로 빛나는 낙엽은 제법 자신을 뽐내려는 듯 황홀하게 나타난다. 눈으로 보이는 곁보다 콧속에 찾아온 가을 향기는 더욱더 매혹적이다. 여름철 무더위 속에서 푸르른 자신을 버리고 이제 불타는 단풍으로 인간에게 여유를 준다. 조금 있으면 황홀한 자신은 버리고 하얀 눈으로 덮어질 것이다. 이렇게 낙엽의 일생은 인간에게 베푸는 배려로 시작해서 희생으로 마감한다. 

주말에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한적한 사찰을 찾았다. 1시간여 전철을 타고 도착한 곳은 소요산역이다. 30여 년 전에 근무했던 곳이라 잔잔한 정이 온전히 느껴지고 열심히 살아온 젊은 시절이 스쳐 간 곳이다. 전철에서 내린 승객의 대부분은 거동이 다소 불편하고 무임승차가 가능한 어르신들이다. 때론 친구끼리, 때론 부부가 지팡이 짚고 힘들게 한발 한발을 옮긴다. 아마 전철 운임도 면제되고 사찰에 오르는 길도 평지이니 많은 분이 시간 보낼 겸 찾아오시나 보다. 그중에 나도 끼었다. 걸음걸이는 아직 똑바로 나아가나 계단을 오르면 다소 숨이 차다. 사찰에 오르는 길은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대가도 없이 가져다준 여유, 모델만 바꾸면 언제나 작품 사진을 만들어 주는 자연의 풍경, 폭포에서 내리는 시원한 물줄기는 내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린다. 오르는 길에 어르신들이 쉴 수 있는 쉼터가 제법 모양을 갖추고 많이 만들어져 있다. 불편한 분들을 위한 지자체의 큰 배려가 엿보였다. 쉼터에 앉아 한 줄짜리 김밥을 먹으며 자연과 함께 해본다. 오랜만에 혼란한 정신을 비우고 자연 속에 텅 빈 나를 맡겨본다. 지나온 젊은 시간, 고생하며 경쟁적으로 살아온 세상살이를 잠시 접어둔다. 인생의 대부분을 같이 살아온 가족과 지내온 얘기, 살아갈 얘기를 한다. 마음은 더 깊숙이, 더 열성적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두 장만 남은 세월은 또 연륜의 벽돌을 쌓이게 한다. 산속의 낙엽이 앉아 있는 내 무릎에 떨어진다. 이제 서둘지 말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메시지인 것 같다. 

또 걸음을 재촉해본다. 옆에 즐비한 제법 가격이 있는 음식점은 한가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어르신들에게는 아마 지나가는 남의 음식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음식점이 붐벼야 이곳 경제에 도움이 될 텐데 모든 것이 아쉽다. 왜 젊은이들은 이태원·홍대는 자주 가는데, 이곳처럼 맑은 유혹의 길은 찾아오지 않는지?

사찰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동두천시장에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 찾아가 보았다. 어릴 적 보았던 공연한 후 동네에서 약·음료수를 파는 노천 공연장이다. 자리에 앉아 즐기는 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다. 시간 흐름도 잊은 채 웃고 손뼉 치고 재미있다. 한동안 나도 지켜보았다. 흥겹게 노래 부르며 춤추는 공연자도 몇십 년 전으로 나를 되돌려 옮겨 놓았다. 흥겨운 노래 한곡 부르고 나면 어김없이 장사 모드로 접어든다. 어릴 적 고향에서 보았던 서커스 공연 모습과 유사하다. 

요즘 지자체마다 특색에 맞는 축제를 연다. 우리 고향도 얼마 전에 군민의 날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우리 고향, 영암에서도 펼쳐지는 축제를 기억하고 싶다. 꽃과 빛으로 물드는 가을의 정원 월출산 국화축제에서 가을의 낭만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 월출산 자락을 따라 국화의 향연이 그리워진다. 사단장 시절에 찾아간 영암의 국화는 지금도 향기로운 내음이 나는 것 같다. 기찬랜드에서 그동안 지친 마음을 달래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며 여유로운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영암 월출산 국화축제가 그리워진다. 강진만의 황금빛 춤추는 갈대축제, 해남의 미남축제, 순천의 푸드앤 아트페스티벌 등 우리 고향은 가을 축제의 시즌이다.

이제 한 걸음만 천천히 옮기면서 재촉함을 버리고, 욕심이 끝이 없는 세상 속을 거닐고 싶다. 믿음이 통하고 지금까지 맺어온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이어 나가는 나의 삶을 배려하는 낙엽을 보며 차분히 지내고 싶다. 낙엽이 건네주는 속삭임을 멍하게 느끼며 나무들이 들려주는 심포니를 들어보며 참 아름다운 가을을 간직하고 싶다. 가을의 좋은 유혹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일년 후에도 지금과 같이 건강하게 낙엽의 비밀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