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 난민의 도원향

2025-10-02     영암신문
현 의 송    
  학산면 광암마을生​​​​​
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 ​​전 농민신문사 사장​
 연주현씨 전국 대종회장

올해 한반도는 역사상 유례없는 긴 장마와 잦은 태풍으로 인해 농작물과 농업시설의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재난이 빈발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으나 실감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는 지구촌 곳곳의 국경봉쇄 조치 등으로 글로벌 경제와 유통시스템이 마비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런 혼란도 기후변화로 일어난 것임을 인지하면서 생활의 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농산촌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이다. 농산촌에서 유토피아를 찾자는 움직임이다. 일부 지자체는 농산촌 유토피아 조례를 제정하고 지방정책으로 지원하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촌유토피아라는 연구 자료를 발표했다.
그러나 동양의 도원향은 현실의 생활 속에 도원향이 있다는 자연 순응적 사상으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큰 위안을 주고 있다고 본다. 도연명이 400년대 무릉도원을 노래한 시가 도화원기에 있다. 그는 시골에 은거하며 괭이와 삽을 들고 농사를 지었다. 평생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지만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았다. 직접 노동하면서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세계도 일상 생활 속에서 나오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1500년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어원으로 보아 ‘없는 장소’ ‘좋은 장소’의 뜻을 갖고 있다. 없는 곳이지만 인간의 능동적 개척정신으로 좋은 장소로서의 이상 사회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를 보면 서양의 적극적 유토피아 사상은 그 목표와는 달리 오늘의 기후위기, 환경위기, 코로나19 등 큰 재앙을 불러오는 것일까 생각한다. 
동양사상의 도원향이나 서양의 유토피아는 인류의 이상적인 무대가 분명히 농산촌이라는 사실이다.

지구촌 난민은 어디로
인류의 삶은 과학기술문명의 발달로 풍요롭고 편리해졌다. 금과옥조처럼 생각했던 과학기술문명은 환경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구 전체적인 거대한 위기다. 인류 삶의 존재 기반인 지구촌의 환경은 인간의 무분별한 삶과 공격으로 멸망 직전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환경이 인류의 삶을 공격하는 형국이다. 코로나의 공격은 현생 인류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인 셈이다. 
기후변화가 가장 무서운 것은 식량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도 코로나 위기도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먹을 식량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식량 자급률이 46%이고 자원과 에너지도 외국에서 들여오는 나라다. 우리가 식량 난민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2019년 초 호주에서 안보전략가들이 기후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시아의 강수량에 일부 변화만 생겨도 몇억 명이 기아에 시달릴 수 있다. 아시아인들이 호주로 배를 타고 오면 호주군대는 어떻게 막아야 하나는 보고서다. 이들은 기후과학자가 아니라 안보전략가들이 쓴 보고서의 내용이다. 당사자인 우리는 기후위기에 너무 둔감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은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고 불릴 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대기질 35위, 기후변화대응지수 58위 등 거의 모든 지수에서 꼴찌 수준이다 
지금 우리 인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바로 오늘의 우리들 모두는 21세기 지구촌 문명의 난민이 되고 있다. 

인류의 귀소본능(歸巢本能)
지구촌이 건강할 때는 도시의 번창이 매력적이지만 도시가 피폐해진 지금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다. 바로 농촌과 자연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현대인들이 가장 간절하게 추구하는 것은 심신의 건강이다. 코로나 위험의 근본 원인인 밀접(密接),밀집(密集),밀폐(密閉)가 없는 농적 공간은 분명 도원향이고 유토피아다. 
관광업계도 세계여행보다는 국내 농산촌 여행 즉 마이크로 투어리즘으로 전환해야 한다. 농산촌 체험 여행은 삼림요가 수확체험 등 헬스 투어리즘일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의 순환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새로운 시대는 농업농촌의 강점이 발휘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농식품과 식량을 생산 공급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도시지역 사람들 모두를 어머니의 품속에 끌어안고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포용적 농업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지속가능한 순환형 사회에서는 생산·유통·소비를 지구 전체는 물론, 그 지역의 환경용량과 생태계의 수용 가능 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순환형 사회의 설계원리는 소규모 분산 복합화 지역 내 순환이 우선이다. 지역마다 각각 특색 있는 환경과 생태계의 다양성에 합치되는 활동전개가 필요하다. 가급적 지역 내 근처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순환경제의 구조는 바로 우리가 주장했던 ‘21세기형 신토불이 적 지역순환경제’다.
농산촌은 일상생활 속에서 생명을 키우고 안전한 삶을 유지하는 곳이다. 생명을 키우고 감사하며 이를 섭취하거나 남에게 줄 수도 있는 일상이다. 기르고 주는 것이 가능한 농적 생활은 인간 정신을 겸손하고 풍요롭게 한다.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에서는 19세기 후반 아트크라후트 운동이 일어났다. 획일적인 공업제품에 둘러싸인 생활에 의문을 느끼고 자연과 전통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면서 수작업노동을 중요시하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하자는 주장이다. 이 운동에 찬성한 사람들이 자기 생활의 무대를 농산촌이라고 생각하고 이주를 시작했다. 즉 도시인의 농산촌 회기 운동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대도시의 과소화 진행과 함께 이제 농산촌에도 훈풍이 올 것이라는 예언도 있다. 농산촌 순환형 경제의 활성화가 지방도시를 살리고 국가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의 인류에게는 신토불이적 삶의 생활화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