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여주시 구양리, 태양 빛으로 미래를 열다

작은 마을, 주민이 주인 된 ‘햇빛두레발전소’ 전국 모범사례

2025-08-29      문배근·신준열 기자
70여 가구, 150여 명이 사는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 마을은 지난해 4월 마을회관, 창고 등 6개소에 997㎾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완공, 봄·가을 월평균 2천400~3천만원, 겨울철 1천700만원 가량의 수익을 올려 전액 마을 복지에 사용하고 있다. 교통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 ‘행복버스’를 운영하고, 마을식당에서는 점심때 무료급식이 제공된다.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릉 동쪽에 자리한 구양리 마을을 찾았다. 70여 가구에, 15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에서 견학 발걸음이 이어지는 ‘모범마을’로 떠올랐다. 과거 임금께 진상하던 ‘진상미’로 유명했던 구양리가 이제는 ‘햇빛두레발전소’를 통해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상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주인이 되어 태양광 발전을 추진하고, 그 수익을 공동체 복지와 연금으로 나누는 독창적인 모델을 실현하면서 구양리는 ‘에너지 자립마을 1번지’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세종대왕릉 곁의 전통 쌀 마을, 새로운 도전
구양리는 풍수지리적으로도 명당으로 꼽힌다. 동쪽에는 세종대왕릉이 자리 잡고, 북쪽에는 남한강, 서쪽에는 양화천이 흐른다.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고래실과 다랑논이 형성돼 벼농사가 활발했다. 이곳에서 길러낸 쌀은 맛이 뛰어나 ‘자채쌀’, 임금께 진상하던 ‘진상미’로 불렸고, 지금도 대부분 주민이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농촌 고령화와 기후위기의 파고 앞에서 마을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했다. 그 돌파구가 바로 태양광이었다.

협동조합으로 뭉친 주민들
구양리의 변화는 2021년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농어업비서관이던 최재관 햇빛배당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가 “마을 주민이 주인이 되는 발전소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전주영 구양리 마을 이장은 주민들과 함께 뜻을 모아 ‘햇빛두레발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기존의 농촌 태양광이 외부 자본이나 일부 주민의 소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면, 구양리는 주민 모두가 주체가 되는 방식이었다.

이듬해 산업통상자원부 ‘햇빛두레’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사업 추진에 날개를 달았다. 사업비 16억7천만 원은 전액 장기 저리 융자로 충당해 주민 개인이 직접 부담하지 않아도 됐다. 지난해 4월 완공된 발전소는 마을회관, 창고, 체육시설, 주차장 지붕, 그리고 일부 농지를 활용한 총 6개소, 997㎾ 규모다. 

발전 수익, 공동체 복지로 환원
구양리 발전소는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발전량 442㎿h를 기록하며 9천271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월평균 2천300만 원이 넘는 규모다. 이 수익은 전액 마을 복지로 돌아간다.

교통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운영되는 ‘행복버스’는 사무장이 직접 운전하며 병원이나 시장까지 주민들을 실어 나른다. 매일 점심에는 구양리 새마을식당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무료급식도 운영하며 공휴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점심이 제공돼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챙기고, 주민 간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또 마을 행사·교육, 문화공연 등에도 발전 수익이 쓰여 주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전주영 이장은 “예전에는 전자파가 해롭다, 수익이 불투명하다며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만족한다”며 “사업을 통해 마을의 화합도 더 커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사업은 사무장, 식당 조리사, 노인 일자리 등을 만들어 일자리 창출 효과도 낳았다.

‘햇빛연금’과 청년 정착까지 내다본다
현재 1㎿ 수준인 발전 규모를 차차 늘려 가구별 냉·난방비 지원, 지역 화폐 지급 등 회의를 통해 주민복지 향상을 위해 다양한 ‘햇빛연금’의 지급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이는 노후 복지까지 책임지는 획기적인 구상이다. 더 나아가 청년 귀농·귀촌 시 일정량의 발전량을 배정해 청년 정착을 돕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전 이장은 “봄·가을에는 월 2천400만~3천만 원, 겨울철에도 1천700만 원 이상의 수익이 나온다”며 “대출 원리금을 갚고도 순수익 1천만 원 이상이 남는다. 발전 규모가 커지면 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이 배우는 구양리 모델
구양리의 사례는 전국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구양리를 방문해 “대한민국 미래의 첫 출발지”라며 극찬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최근 현장을 찾아 “구양리 모델을 바탕으로 햇빛소득마을 500개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태양광 전자파 유해성 논란, 고령층의 반대, 사업성에 대한 의구심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여주시의 설명회와 교육이 주민설득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또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물 공급 라인도 마을을 가로질러 지나가게 되면서 받은 보상금 등이 더해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현재 구양리는 경기 광주, 포천, 충남 태안·홍성, 강원 화천 등 전국 각지 지자체와 주민들이 견학 오는 현장 학습장이 되고 있다. 이현 사무장은 “아침마다 ‘행복버스’ 신청 전화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며 “앞으로는 문화행사와 관광자원 개발에도 발전 수익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햇빛으로 다시 태어난 마을
구양리 햇빛두레발전소는 단순한 에너지 시설이 아니다. 주민 모두가 함께 참여해 수익으로 복지를 실현하며, 미래 세대를 위한 기반까지 마련하는 새로운 실험이다.
전 이장은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만족하는 사업이 됐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화합이 가장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세종대왕릉 곁에서 임금께 진상미를 길러 올리던 구양리가 이제는 태양빛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구양리의 도전은 대한민국 농촌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