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번 손이 가야 콩 심은디 콩 나고 폿심은 디 폿나”

2025-07-04     이기홍
이 기 홍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 석현초 교장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먹먹한 책자를 받았다. 월간 전라도닷컴이 금년 6월 10일자로 펴낸 332쪽짜리 ‘서호 마실’이다. 마을 사람들의 말과 기억을 받아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을 모은 책이다. 첫 장을 열때부터 너무나 아까워 빨리 읽어버릴 수가 없었다. 마실을 돌 듯 음미하며 읽어가는 동안 가슴은 벅차올랐다. 일 년 전 늦가을 해 질 무렵, 누군가 나를 찾아와 아시내 내력을 묻고 마을 사람 이야기도 궁금해하기에 넋두리 삼아 어두워질 때까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책자가 되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숨죽이며 몇 장을 읽다 책장을 덮고 서호 마실 사람들과 함께했던 유년 시절을 돌아보고, 다시 책장을 열어 내 주변을 둘러보기를 반복했다. 서호 은적산 민초들과 작가가 어우러져 써 내려간 문장은 하나하나가 보석이었다. 그동안 흙에 묻히고 검불에 가려지고 먼지에 싸여있어 그 빛을 볼 수 없었던 사연들이 가슴 뜨거운 작가들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은적산 민초들의 몇 마디 말속에는 팔만대장경과 사서삼경이 송두리째 잠겨있었고, 성경이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들려준 몇 마디 말은 닳고 부스러진 팔 구 십 년 인생이 고(膏)를 내어 토해낸 결정체이기에 숨이 멎지 않을 수가 없었고, 붉은 해가 노을 지는 서산마루에 걸터앉아 자식들을 향해 내뱉는 회한이기에 곱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호 마실과 함께해 온 당산나무도, 놀이터 정자도, 조상의 정신을 갈무리해온 사우도, 그리고 은적산과 서호강도, 갯논과 자갈밭도, 그 무엇 하나 따로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커다란 마실이었다. ‘서호 마실’을 읽는 동안 오지도록 구수한 그 사투리에 정신이 팔렸고, 사투리 속에 담긴 깊고도 깊은 그 인생철학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민학교 동기인 영모정 임준영 씨가 ‘국민학교 졸업할 때 10원씩 100원씩 저금한 것 찾아갖고, 어무니 몰래 낭주중학교 갈라고 입학원서를 너갖고, 중학교를 가게금 되었는디, 그걸 알고 어무니가 회초리로 얼매나 두들겨 패면서, 끄니도 못 묵고 산디 학교가 먼말이냐’고 나무라는 지청구를 듣다, ‘저녁에 잔디 울음소리가 나, 우리 어무니가 내 종아리를 만짐서 울고 있어, 잠이 깼지만 잠 깬 시늉도 못했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제’라고 대담한 대목은 그가 흘린 눈물을 이제사 알게 했고, 속상하고 미안하게 했다. 또 형처럼 생각하는 양동 유재학 씨가 스물일곱 살에 혼자된 ‘울 어머니가 어디로 내삘까봐, 잘 때는 어머니 옷고름을 뭉꺼놀란다고 했던 기억’이 나고, ‘울 어머니 부끄럽게는 안 살았어요.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 앞에서 아니오라는 말을 안 해봤어요.’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무엇이 목까지 올라오는 뜨거움을 느꼈다. ‘주고 나문 정이 남제.’라고 한 여든 살 금강 오금순 여사, ‘이녁 맘도 안 가꾸고 내비 두문 배래, 풀매드끼 매야제‘라고 한 여든세 살 아천 나앵자 여사, ‘우리들은 자식들 국그륵에 멀거니 몰국만 떠놓고 국그륵 안에 눈물이 돌아댕긴 시상을 살았제’라고 한 아흔한 살 엄길 조갑임 여사, ‘수십 번 손이 가야 콩 심은 디 콩 나고, 폿 심은 디 폿 나’라고 한 여든네 살 영모정 이공순 여사, ‘열심히 살문 어차 튼 간에 질이 뚫여’라고 한 여든아홉 살 소흘 김금례 여사, 애틋하고 곰삭은 천금같은 그 말에 고개를 떨궜다. 

‘서호 마실’은 은적산 민초들을 아름답고, 고귀하고, 성스럽게 그리면서, 그들이 고아 낸 감동이 뚝뚝 떨어지는 얘기들을 보물로 엮어냈다. 생생한 개인 사연으로 서호면의 역사와 문화를 살려낸 것이다. 울컥하고 뭉클하고 먹먹해지는 온갖 이야기들이 담겼기에 ‘서호 마실’ 책자는 천 년 바위처럼 우리들의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전해줄 것이다. 

‘서호 마실’ 중간쯤에 장천국민학교 몇 년 선배로 모범생으로 기억되는 산골정 마을 서용식 씨가 한 말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촌에서는 질을 지나다 보문 뱀이 죽어 있고, 쥐가 죽어 있고, 짐생이 똥을 누고 가고 그래. 우리 아버님이 그걸 보문 아무리 급해도 치우고 가셔. 내가 더러운 걸 치우문 내 뒤에 온 사람들은 더러운 꼴을 안 본다 그 맘으로 하신 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