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슬픈 기억 하나
칠순을 바라보는 짧지 않은 세월에 슬펐던 기억이 한 둘일까만은 너무 아려서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 하나가 상념이 멈추고 마음이 고요해질 때면 문득 떠오르곤 한다.
요양병원 치매 병동에서 잠깐 동안 일을 할 때였다. 화통한 여장부였을 것 같은 할머니 한 분이 작은 사각 휴지통에 식사 때면 입는 턱받이용 앞치마며 손거울 머리빗 등 소소한 물건들을 꾹꾹 눌러 담아 보물처럼 싸맸다. 그것들을 지팡이 끝에 매달아 짊어지고 끝이 안보이도록 아스라한 병원 복도를 온종일 걸어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우리 아들 못 봤느냐고 물으셨다. 우리 아들 박사 아무개인데 온다는 전화가 와서 기다리는 중이라며 어긋나서 못 만날까봐 쏜살같이 양쪽 끝을 오가며 다람쥐처럼 빙빙 돌고 돌았다. 활등 같은 허리가 땅에 닿을 듯 가물거렸다.
중·고등학교 우등상장 들고 올 때는 대견해서 신났고, 그 어렵다는 박사님 되었을 땐 자랑스러워 힘을 냈을 어머니, 저렇듯 쉴 새 없이 일하면서도 행복했으리. 그때는 일에 지쳐 빠저들던 잠을, 이제는 기다림에 지쳐 수면 주사에 의지해 잠이든 할머니의 눈가엔 그리움이 비처럼 내려 늘 젖어 있었다. 차라리 몽땅 다 잊으실 일이지 당신 이름마저 망각 속에 묻어버린 후에도 자식은 왜 못 잊으시는지? 어쩌다 아들이 다녀간 일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할머니는 날마다 기다림에 목이 탔다.
양가 부모님 임종도 보았고 배우자와의 사별도 겪었지만, 천상병 시인이 노래한 ‘귀천’이란 시처럼 인간은 어쩌면 이 세상에 잠시 왔다 돌아가는 여행자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 무가치한 일에 매여 지체하다가 중요한 일 놓치기 전에 서둘러 돌아갔나 보다고 특유의 건방을 부리느라 슬퍼할 줄도 몰랐다. 슬펐던 기억이라면 그때 그 할머니의 젖은 눈이 기약 없는 기다림이 생각난다. 전에는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는 일이 대단한 효도인 줄 알았다. 그 가공할 갈증으로 타는 고통이 그리움보다 기다림이란 것도 그 전에는 몰랐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모님을 돌볼 수 없어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일반화된 세상이지만 효도랍시고 중환자실에 온갖 약병들 줄줄이 달아 묶어놓은 자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 세상에서 일정이 끝나 돌아가야 하는데 즐거울 수도 없는 곳에 왜 붙잡아 놓느냐고... 잠시 온 놀이터에 발이 묶여 가실 길 잊어버리면 바래다 드릴 수 있느냐고... 안내자도 없이 혼자 길 잊어버리기 전에 고이 보내드리는 것도 효도라고... 감히 말 하고 싶다. 돌아가서 이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추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염치없는 자식인 나는 지금도 답답한 일 있을 때면 부모님 계실 때 배워둘 걸 하며 아쉬워한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지혜를 꺼내 쓰며 살면서 고마운 줄 모르는 불효자이지만 엄마 있던 그 자리에 와서야 비로소 사무처 아득히 하늘 끝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엄마' 하고 가만히 불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