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인도 함께 든 탄핵의 촛불, 반드시 승리하리··
12·3 비상계엄과 관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목소리가 국내는 물론 해외 동포들까지도 거세지고 있다. 우리 영암군민들도 지난 4일 오후 군청 앞 주차장에서 모여 ‘영암군민 긴급 시국대회’를 열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촛불을 손에 들고 ‘헌정 유린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을 촉구하고 나섰다.
영암군의회도 이날 역사적 책임감과 헌법 수호 의지를 담아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국회 장악 시도를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영암군의회는 이번 사태를 “45년 만에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윤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퇴와 국회의 신속한 탄핵 절차를 강하게 촉구했다.
이처럼 거대한 함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대통령 탄핵 소추안 의결에 집단으로 불참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하야를 요구하는 민심에도 대통령과 국무총리·여당 대표는 꼼수로 일관하고 있어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일찍이 영암인의 의로운 정신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영암 출신들이 국난극복에 몸을 던졌는데 도포출신 양달사 형제가 조선시대 ‘최초 의병장’의 역사를 썼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거쳐 정유재란 때는 서호면의 전몽성·몽진 형제가 있었다. 구 한말 때는 영암의 의로운 정신이 더욱 빛을 발한다. 박평남 등 영암 의병들이 주도한 ‘호남창의소’(호남의소)는 함평출신 심남일 의병장과 함께 금정 국사봉에서 빛나는 전쟁을 이어갔다. 의병 전쟁이 독립전쟁으로 본격화될 때 ‘영암 의병’들이 ‘호남의소’의 핵심 역할을 했던 것이다. 남도 의병 사령부가 있었던 금정 국사봉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의병장 양방매 여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각종 자료를 토대로 확인된 구 한말 영암출신 의병은 190명에 이른다. 이처럼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영암 의병’의 혼은 1919년 구림과 영암읍에서 일어난 3·1독립 만세운동, 영보항일 농민항쟁으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1980년 5월, 전두환에 맞선 저항의 함성은 영암의 의로운 혼을 일깨웠다. 광주의 참상을 전해 듣고 이 고장 청년들은 또다시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역사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함이 없이 기록할 때 가치가 있다고 했다. 불굴의 애국정신으로 신명을 바쳤던, 우리 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은 지금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가 됐다.
헌법을 유린하고 친위쿠데타를 통해 내란을 도모한 윤석열과 그의 동조자들은 다시 한번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