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열 사람이 같은 해에 과거 급제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경기 어떠하니 잇고)

월출산 벚꽃 백 리 길[161] ■ 구림마을(70)

2024-12-13     영암신문
죽정서원의 가을 풍경 - 간죽정에서 서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내려서면 오한공 박성건을 모신 죽정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노랗고 빨간 단풍이 물들어 늦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박성건은 금성 향교 교수로 있을 때 가르쳤던 제자 10명이 소과에 합격하자 ‘금성별곡’이라는 경기체가를 지어 기쁨을 나타냈다. 올해 10월, 나주시는 금성별곡을 문화콘텐츠로 개발하여 나주 향교에서 ‘가무극 금성별곡’ 공연을 선보였다. 우리 영암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것 같아 부러운 생각이다.

경기체가(景幾體歌)란?

<경기체가>는 고려 후기에 발생하여 조선전기까지 약 350년간 지속된 장형의 교술시가(敎述詩歌)이다. '교술'이란 작자가 자신이 실제 겪었던 체험 사실을 기록하는 양식이다. <경기체가>는 운율이 있으므로 형식상으로는 시가문학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정서의 전달보다 사실적 내용을 바탕으로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설명하는 교술적 성격을 띤 문학이다. 

<경기체가>는 연이 나누어지고 여음(餘音)이 있는 속악가사의 형식을 따라 만든 사대부들의 노래이다.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구체적 사물을 나열한 다음 '위'라는 여음을 전환점으로 하여 감탄의 생각을 종결짓는 형식이다. ‘여음구’는 흥을 돋우기 위해 사용하는 ‘조흥구’라고도 하는데, ‘남는 소리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감탄사가 대표적인 예이며, 고려가요나 민요 등에 그런 구절이 많이 나온다.

<경기체가>는 대부분 ‘경(景) 긔 엇더ᄒᆞ니잇고’ 또는 ‘경기하여(景幾何如)’라는 구절이 제4행과 6행에 있으므로 ‘경기’를 따서 붙여진 갈래 상의 명칭이다. 이외에도 이 구절 전체를 따서 경기하여가(景幾何如歌) · 경기하여체가(景幾何如體歌)라고 하기도 하고 노래 제목에 붙은 ’별곡‘ 때문에 별곡체(別曲體) · 별곡체가(別曲體歌) 등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발견된 작품은 고려 후기의 작품이 3편, 조선시대의 작품이 23편으로 모두 26편이다. 

오한 박성건의 금성별곡(錦城別曲)

1480년(성종 11) 박성건이 지은 경기체가로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함양박씨세보(咸陽朴氏世譜)에 실려 있다. 총 6장으로, 작자가 금성(錦城 지금의 나주) 향교의 교수로 있으면서 가르친 제자 10인이 소과에 급제하자 그 감격을 읊은 작품이다.

제1장에서는 자연이 아름다운 나주 고을은 빼어난 인재가 많이 배출된 곳임을 자랑하였다. 제2장에서는 이 고장의 유생들이 향교를 중심으로 하여 일으킨 면학의 기풍을 찬양하였다. 제3장에서는 당시의 나주목사 김춘경(金春卿)과 통판(通判) 오한(吳漢)의 선정을 칭송하였다. 제4장에서는 작자의 교훈이 교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을 자랑하였다. 제5장에서는 이 고장의 유생 10명이 함께 급제한 것을 고을의 장하고 아름다운 일로서 칭송하고, 또한 나주의 벌족인 금성나씨 일문에서 6명이나 함께 급제한 영광을 노래하였다. 제6장에서는 급제를 축하하는 고을 잔치에서, 가무와 음주를 즐기면서도 질서를 잃지 않는 유생들을 칭찬하였다. 

금성별곡 전문
1장
바다의 동쪽인 해동·호(湖)의 남쪽인 호남의 나주는 큰 목사가 다스리는 고을로, 금성산이 우뚝 솟고 금성포로 흘러가는 물과 함께 영원히 변함없는 산천이로다. 

아! 빼어난 재주 있고 놀라운 사람들이 모여드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아득한 옛날부터 경치 좋고 이름난 곳,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고 물산이 풍성함이니, 아! 아름다운 서기가 푸르고도 성한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2장
대성전과 명륜당, 앞은 문묘요, 뒤는 정침(正寢)으로, 동재서재(東齊西齊)에 딸린 월랑(月廊)과 좌우협실(左右夾室)에다 반궁(泮官)에 두른 물은 양양하도다. 손수 심은 전나무와 푸른 솔이 있는 정자 앞 높은 향교에는 공자의 칠십문인과 삼천제자처럼 유생들은 점잖고 공손한 모습이로다. 

아! 학문과 덕행을 닦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때때로 경서와 사기를 박람하고 섭렵하느니, 아! 날로 달로 진보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3장
목사인 김춘경(金春卿)과 통판(通判)인 오한(吳漢)은 한때 뛰어난 인재로, 임금님의 근심을 나누어 주매, 천리 땅 한고을을 능히 부지런하게, 능히 검소하게 잘 다스리느니, 잘하는 정치는 백성들한테 재산을 얻게 하고, 잘하는 가르침은 민심을 얻게 하고, 인자하다는 평판과 인자하다는 소문은, 그때마다 세 가지 기이한 일에 이르게 되도다.

아! 덕으로써 백성을 교화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학문을 닦음으로 훌륭하게 되어가는 학교는, 더욱 뜻에 이르게 되는구나.
아! 지식과 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양육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4장
박성건은 유생을 가르치는 교수요, 대선생(大先生)으로서 때때로 강의하는 좌석을 펴고, 다섯 가지 가르침을 베풀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다 들추어내어, 차근차근하게 잘 인도해 주느니,

아! 글 숭상하는 풍습을 떨쳐 일으키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드러나지 않게 선생님께서 조용하게,
아! 스승은 총명하고·제자는 사리에 밝은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5장
김숙훈(金叔勳)과 최귀원(崔貴源)은 부모님이 다 생존해 계시고,
라환전(羅渙典)과 라경원(羅慶源) 형제는 평안하도다. 
라진문(羅振文)과 라경광(羅慶光)은 비로소 가문을 일으켰고,
김숭조(金崇祖)와 홍귀지(洪貴枝)는 나이 젊어도 재능이 있었도다.
라현(羅顯)과 라빈(羅贇)은 사촌형제간으로서,
아! 함께 소과급제자의 성명을 기록한 방에 붙은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어느 누가 갖는 즐거움이런고, 한 고을에서 지식과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여,
아! 열 사람이 같은 해에 과거 급제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6장
소서시(笑西施)와 만환래(萬喚來)라는 기녀의 맑고 고운 노래와 절묘한 춤,
승목단(勝牧丹)과 아응아(亞應兒)라는 기녀가 빗겨 부는 옥피리 소리,
하삼산(下三山)과 계일지(桂一枝)라는 기녀가 서로 켜는 보배 비파 소리,
세류지(細柳枝)와 일지화(一枝花)라는 기녀가 타는 쌍가얏고 소리,
영주남(詠周南)과 만원유(萬園幽)라는 기녀가 손길을 나란히 하여 치는 장굿소리,
북춤에서 북소리는 봉봉 울리고, 경쇠와 피리소리는 장장 울리고, 오음(五音)인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와 육률(六律)인 황종(黃鍾)·태주(太簇)·고선(姑洗)·유빈(imagefont賓)·이칙(夷則)·무역(無射) 등이 같은 때, 함께 소리를 지어내느니,
아! 취한 속에 한바탕 즐거운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상산월(商山月)과 무산월(巫山月)이라는 기녀가 두루 잘 비치는 서창(書窓)가에서, 노래를 다시 부르니,
아!  대사화(待使華) 독조(獨調)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계속>  
 글/사진 김창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