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경찰 기자의 추억
1977년 필자는 KBS 종로경찰서 출입 기자였다. 서울 종로경찰서를 중심으로 인근 성북경찰서와 북부경찰서를 출입했다. 취재대상은 경찰서 뿐만 아니라 관내에 있는 구청, 대학, 병원, 소방서 등 모두가 취재대상이다. 신문방송 사건 기자들은 각사에서 돌아가면서 자동차를 지원받아 공동으로 취재 활동을 폈다. 그러나 특종 기사를 단독으로 취재하기 위해 다른 언론사들을 따돌리기도 한다. 언론사 간 치열한 취재 경쟁으로 서로 앞다퉈 비밀을 지키며 특종을 위해 몸부림친다. 기자들 복장도 경찰서 형사처럼 점퍼와 바지 등 허술한 차림으로 취재 활동을 한다. 기자들은 일반인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많이 한다. 경험은 기자의 자산이지만 때로는 그것을 과시하거나, 지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특히 새내기 기자일수록 지나칠 정도의 자만심을 갖거나 취재를 빙자해 업무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사건 기자 시절의 필자 또한 그것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경찰서 출입 기자 시절, 관내 사건·사고 등을 점검하느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현장에 있다 보니 늘 피곤했다. 경찰서는 그런 기자들을 깍듯이 모셨다. 경무과장이 수시로 점심·저녁을 챙겨주었다. 기자들이 수사과장실로 몰려가 수사과장의 의자에 앉는 등 수사과장실을 기자실처럼 마음대로 사용했다. 그래도 수사과장은 비켜달라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경찰서장실은 노크는커녕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다. 지금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그러나 그 시절 경찰서장은 서장직을 유지하기 위해 출입 기자들을 상전으로 모시며 비위를 맞춰야만 했다. 1978년 종로경찰서 관내는 ‘오진암’이라는 유명한 요정이 있었다. 종로 낙원상가 옆에 있던 오진암은 청와대, 안기부, 기무사 등의 정부 주요 인사들이 드나들며 국가 현안을 논의하던 곳으로 삼청동 삼청각, 성북동 대원각과 함께 1960~70년대 밀실정치를 상징하는 곳이다. 오진암은 한복을 차려입은 여종업원이 나오는 대한민국 최고의 요정이자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라는 오랜 전통을 가진 곳이다.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 가는 술집. 필자와 종로경찰서 출입 기자들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몹시 궁금했다. 마침내 “우리가 기자인데, 요정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요인들이 오는 곳을 한번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 관내의 주요 장소를 둘러봐야 한다”는 등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당시 최영덕 경찰서장(해양경찰청장, 국회의원 역임)에게 구경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종로경찰서는 청와대 담당이어서 종로경찰서장은 아무나 갈 수 있는 직책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다음 승진이 보장되는 자리였다. 평소 기자들을 격의 없이 대해주고, 사나이답게 행동하던 최 서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젊은 경찰 출입 기자 12명은 경찰서장, 경무과장, 수사과장, 보안과장을 앞세워 대한민국 1%만 출입한다는 요정에 가게 됐다. 여느 술자리처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밴드 연주에 맞춰 노래하던 중 사고가 일어났다. 방 안에 화장실이 있었는데도 밖에 나가 화장실을 찾던 모 방송사 기자가 많이 취해 그곳에서 술을 마시던 국정원과 국무총리실 주요 인사들의 신발 위에 ‘실례’를 한 것이다. 이를 본 경호원들은 해당 기자에게 사정없이 폭행을 가했다. 기자는 피를 흘리면서 우리 방으로 들어와 요정 직원들에게 폭행당했다며 막무가내로 술상을 뒤엎었다. 술자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기자들이 술에 취하면 술주정을 부릴 것이라고 예상한 최 서장은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과장들에게 이곳을 맡기고 요정을 슬며시 떠난 뒤였다. 애꿎게도 수사과장과 보안과장이 이를 수습해 별일 없이 오진암을 나올 수 있었다. 오진암에서 나오니 자정이었고, 통행금지로 발이 묶이게 됐다. 기자들은 통행금지 위반자를 태우는 경찰 ‘닭장차’를 타고 인근의 나이트클럽에 또 갔다. 거기서 밤새 술을 마시다 새벽 해장술까지 마셨다. 전날 밤 모 기자의 행패가 알려졌지만, 다행히 최 서장은 고위층에 실력을 발휘해 사건을 잘 무마시켰다. 취재를 빙자한 기자들의 일탈은 조용히 넘어갔다. 젊은 기자들의 호기심에 비롯된 요정 외유는 지금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경찰서장과 싸우고 오면 회사에서 칭찬받았던 1970년대 언론 분위기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