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금융인을 시장으로 모셔 온 시민의식과 30년 만에 귀향한 이와쿠니데쓴도의 직업의식
2005년 어느 날, 일본 슈도대학의 히구마 교수와 그의 세미나 회원 10여명은 히로시마 북쪽 시오바라에서 밤새 공연하는 일본농촌의 전통 공연예술인 가구라를 관람했다. 다음 날은 시미네 현에 있는 이와미긴산 견학에 나섰다. 20년 전, 그때 이미 환경을 고려해서 전기자동차, 자전거, 1인 택시만을 이용해서 관내를 관광하게 되어 있었다. 히구마의 설명은 이와미긴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점과 이와쿠니데쓴도씨는 세계적인 금융전문가인데 시장이 되어 획기적으로 개혁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구 10만 정도의 도시 이즈모시의 주민들이 미국까지 가서 고향의 시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향에 돌아와 시장으로 당선되어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일본 전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즈모시에 있는 이즈모대사라는 유명한 관광지는 결혼의 운이 따르는 신사로 유명하고 일본 대정천황의 종손녀 센가노리코가 여기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해서 유명하다. 이즈모대사 입구에는 수령 400년 이상의 소나무가 길 양옆으로 서 있어 일본의 ‘명송 100길’로도 선정되었다.
이와쿠니씨는 시장출마를 수락한 전제조건으로 모든 정당의 연합공천을 받아야 출마한다고 했다. 이즈모시가 있는 시마네현은 다케시다 전 수상의 지역구이므로 자민당의 압도적 우세지역이다. 그래서 사실상 다른 당의 공천은 필요 없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와구니씨는 자민당 공천은 물론 사회당, 공명당, 민사당의 추천을 받아 자민당의 지지자만 보고 폐쇄적인 행정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참가해서 책임도 함께 지는 열린 행정을 주장했다. 그래서 공산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정당의 추천을 받았다. 여기에 공무원노조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응원해주었다. 또 상대 후보를 사퇴시키는 등 무투표 당선은 안 한다고 선언했다. 대립하는 후보를 설득하여 무투표 당선하는 방법도 있지만 반드시 투표를 통해 당선해야 한다고 했다. 선거운동을 통해 행정의 목표를 설명하는 기회를 만들고 시민들의 생각과 요망을 들어볼 중요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대통령후보자는 1년 동안 전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기 정책을 발표하고 폭넓은 국민의 소리를 들어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해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동경의 신문들은 년 소득 10억 엔(한화 100억 원)을 버리고 1천만 엔(한화 1억원)을 선택한 세계적 금융전문가의 귀향이라는 타이틀로 보도했다. 이와쿠니데쓴도는 1989년 당선하자마자 바로 취임식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시청은 가장 좋은 서비스회사다. 직원 여러분은 새로운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해왔던 관행을 완전히 버리고 나와 함께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해 주기 바란다. 시민이 시청에서 배워야 할 정도의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함께 할 직원을 추천하면 인사에 반영하겠다. 다만 추천 대상자는 여러분보다 능력이 우수한 직원을 추천해 주기를 부탁한다고 했다. 취임 후 일주일이 지나 가장 먼저 시내에 있는 대형 쇼핑센터에 토 일요일 행정창구를 설치 운영했다. 공직자의 서비스 의식을 민원처리로 출발한다고 했다. 그리고 민원 처리시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는 대답은 절대 사용 못하고,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의 대답을 하도록 했다. 첫째 다음 주 중 반드시 회신해 드리겠습니다. 둘째 1개월 이내에 회신하겠습니다. 셋째 3개월 이내로 회신하겠습니다.” 대답은 세 가지 뿐이라고 지시했다.
직원 채용 때 의원의 추천을 금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경영의 근본은 사람의 사용방법이다. 기업도 관청도 같다. 능력 있는 인재를 공정하게 등용시켜야 지역사회에 애정을 갖고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의원들의 인사개입을 차단하고 능력자를 채용하기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업개발을 시장이 지시하면 직원들은 예산이 없어 못한다는 대답을 한다. 그러면 시장은 시민이 당신에게 월급을 준 것은 귀하의 위장에만 준 것이 아니다. 귀하의 머리에도 급료를 주었으니 머리를 써서 지혜를 짜내보고 다시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65세 이상 주민에게 고령자 종합복지카드를 발급했다. 카드에는 개인의 건강에 관한 모든 의료정보, 모든 자격증, 학력, 경력, 금융기록 등을 통합한 카드 1매에 저장 발급해서 고령자들이 목에 걸고 생활한다. 응급 시에 병원에 도착하면 신속하게 응급 조치가 가능하고, 은행에서 입·출금도 가능한 신용카드 기능을 모두 갖고 있다. 어떤 일거리가 가능한지 분별해서 일자리를 마련해줄 수도 있는 주민 종합복지카드 제도다. 이 카드는 이후 일본 정부의 모든 부처가 시행하는 제도로 발전했다. 이외에도 개호 수당제도 시행, 애경사 불참선언, 명절선물 금지, 고령자 교부세 제도 등을 제안하고 실행했다.
임기 4년이 되어가는 어느 날 이와구니 시장은 직원회의 석상에서 “금후 이즈모 시청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반드시 세계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채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방의 행정에도 세계역사와 일본의 위치 그리고 지구촌의 미래방향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장을 재선하는 동안 연구하고 고민해 보니 지금과 같이 시대가 흘러간다면 지방의 시대는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농민에게 쌀 감산을 지시한 것처럼 동경지역의 대학생 감반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즉 교양과정 2년은 농촌에서 공부하고 전공과정은 동경이나 대도시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수도권 각 대학을 전국에 분산하는 정책이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필수적 과제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지방자치 행정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도 있다.
행정은 서비스 산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가장 뒤처져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지방행정에 혁신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행동력은 다른 어떤 정책보다 중요했다. 국제 감각이 넘치는 행정시스템 만들기와 그의 혁신적인 구상은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이와구니씨가 오랫동안 국제 금융계의 최일선에서 활약해온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시청직원의 의식개혁을 주장하고 새로운 지역개발 방향을 제시한 것은 전 일본 지자체와 중앙부처의 고급관료에게 큰 충격이 되었고 지방자치의 모델이 되었다는 평이다.
일본의 최고 평론가 다케무라겐이치씨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경제전문가를 일본의 행정에도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인재를 하나의 조그마한 지방에서 시장으로 모셔가는 것은 이즈모시의 입장에서는 매우 훌륭한 일이지만 일본국가의 입장에서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은 30년 동안 고향에서 떠난 사람을 시장으로 모셔오는 이즈모 시민 모두가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은 도의원, 시의원의 입장에서 시장이 될 기회가 멀어젔는데도 이와구니씨의 당선을 위해 응원한 것은 가장 무엇보다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은 어불성설이다. 민주적 발상이 아니다. 본래 지방이 갖고 있는 권력을 잠시 중앙에 맡겨놓은 것이다. 지방의 행정권은 은행에 맡겨놓은 예금인 것처럼 중앙정부에 맡겨두었던 권한을 환원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경제나 금융이 크면 클수록 많이 버는 세계적 대회사에서 큰 돈을 버는 우등생 역할을 했다. 이제 고향에 돌아와 시장이 되어 약자, 노인, 불행한 사람, 그분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 약자의 논리로 스스로 약자 편에 서서 일하면서 더 큰 보람과 의미를 스스로 체득했다. 시장이 되어 훌륭한 인생 수양을 했다고 생각한다. 30년간 경제계에서 강자의 논리로 살아왔는데 시민의 후원 덕택에 시장이 되어 약자의 논리로 살아가는 가장 큰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30년간 부족했던 공부를 4년간 시장하면서 공부하고 체험한 것이 더 훌륭했다. 동경대학 4년 공부보다 이즈모 시장 4년이 더 의미 있는 인생 공부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우리의 지방자치제도의 시행도 30년이 되어간다.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해오고 있지만 주민들 편에서 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다. 여전히 지역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 산적한 문제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역사상 봉건영주의 시대를 거치지 않는 우리는 ‘사람은 서울로, 망아지는 제주도’라는 말로 대변될 만큼 서울 1극 집중이 여전히 심화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농촌의 인구감소와 초고령화사회 등 국가의 안보와 미래방향으로 보아 이대로 가도 되는지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