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협동조합파다
작년 10월 3일 여느 때처럼 농장에 갔다가 시내버스를 타고 점심 모임이 있어 사당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중간 농촌마을 정류장에서 노인들 5~6명이 버스에 탔다. 타자마자 서로 나누는 이야기가 광화문 행사에 간다면서 좌파우파 이야기다. 다음 날 아침 학교 운동장에서 노인들 10여 명이 운동장을 돌거나 보행기에 의지해서 겨우 걷기를 한다. 그들도 어제 광화문 집회의 좌파우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날 저녁에는 방송 뉴스에서 몇 백만 명이 모였다고 보도하면서 좌파우파 이야기다.
그 후 어떤 집회는 전혀 반대되는 구호를 외치며 몇 백만이 모였다고 한다. 정치적 집회에 몇 백만 명이 모였다는 것을 자랑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아직도 있는가 의심스럽다. 요즈음도 여기저기서 주위 분들의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들어보면 지난 9월 일본의 교토 코무덤 위령제 행사에서 느꼈던 생각이 오버랩 되어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코무덤은 정유재란 때 조선인 12만6천명의 코를 베어다 풍신수길의 사당 앞에 묻은 묘지다. 일본군에게 코를 베인 전라도 해안의 정혼한 처녀 김점순의 이야기를 오래전에 듣고 있었다. 김점순의 고향은 전라도 해안가라고 했다. 이름은 김점순이고 나이는 17살이라고 했다. 약혼자와 며칠 뒤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왜놈들이 닥쳤다고 했다. 내일모레 결혼식을 올려야하니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잔인하게 겁탈당했다면서 통곡했다. 이런 내용의 씻김굿과 함께 노래도 전해진다.
<서러워라 내님아 그리워라 내 님아 내 몸뚱이는 어데있나 코만 덜렁 베어져 먼 나라 일본 땅 속에서 피눈물에 썩어 불고 나는 나는 원통하고 비통한 영혼에 묶여 못가겄네 못가겄네 먼 나라 이국땅에 버림받아 무시받고 천시받아도 못가겄네(이하 생략)
정유재란 때의 역사기록을 보면 이렇다. 왜군은 700척의 병선과 15만 명의 대군을 동원, 한반도를 침략했다. 20일 만에 한양이 점령되고 2개월이 지나면서 전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이 왜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조선의 2만5천의 민초들과 23전 전승한 이순신의 활약으로 왜군은 초기병력의 30%만 살아남았다. 풍신수길은 전쟁을 끝내자는 명나라 사신에게 한반도 절반을 일본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협상이 결렬되고 다시 풍신수길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매년 군대를 출동시켜 조선 사람을 전부 죽여야 한다. 장차 조선을 빈 땅으로 만든 다음 일본의 서쪽(규슈지역) 사람들을 옮기고, 동북쪽 사람들을 서쪽에 살도록 하면 10년 후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이 명령으로 1597년 1월14일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다음은 풍신수길의 추가 명령이다.
“매년 군대를 출동시켜 조선 사람을 죽여라. 전쟁이 이토록 오래 끈 것은 전라도민의 조직적인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전라도로 진격하여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라. 충청도와 경기도를 비롯한 그 밖의 지역은 너희들이 알아서 평정하라.”
이때부터 ‘코베기’ 참극이 일어났다. 즉 풍신수길이 전라도에 앙심을 품고 있다는 증거다. 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의 부안군 보안면 호벌치 싸움에서 의병장 채홍국 부대에게 패함으로서 풍신수길에게는 전라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뼈아픈 기억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 전투를 높이 평가하고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요, 만약 호남이 없으면 곧 나라가 없어진다(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글을 정읍현감 현덕승에게 보내는 편지문에 썼다. 호남 지역의 수많은 의병과 풍부한 농산물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약무호남이 아니라 약무농업(若無農業)이라고 개칭해서 쓴다.
그러나 임진년 왜란이 일어났을 때보다 왜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왜군들은 전라도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울산 등에 틀어박혀 반년을 무위도식했다. 그래서 풍신수길은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다시 강한 명령을 했다. “조선 사람을 죽인 후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병사 1명에 코 한되씩 보내라”고 명령했다. 이를 조선에 전한 자는 대마도 도주 소요시토시(宗義智)가문의 야니카와시게노부(柳川調信)다. 1597년 6월 15일 부산에 도착한 가도기요마사(加藤淸正)는 오히려 덧붙여서 병사 1인당 코 세 되를 베어 오도록 명령했다. 이렇게 하여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코베기’ 만행이 저질러졌다. 이러한 만행은 1597년 8월부터 철수한 11월까지 집중적으로 저질렀다. 조선 백성의 20~25%가 죽임을 당했다.
이때부터 4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라도 어머니들은 ‘이비야’라는 말로 아이들에게 겁을 준다. 엄마가 아기에게 어떤 행동을 못하게 할 때도 ‘이비야’라고 소리친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의 종군 승려 게이넨(慶念)이 쓴 ‘조선일일기’에 의하면 이비야는 귀이(耳), 코비(鼻), 남자야(爺)라는 한자어로 ‘귀와 코를 베어가는 남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만행에 관한 역사자료는 야마구치현 문서보관소, 도쿄대학 사료편찬소, 오카야마현 천인비총(千人鼻塚)에 보관되어 있다. 그들이 전과로 내세운 기록에는 1598년 1월 조선사람 코 18만5천738개, 명나라 사람의 코 2만9천14개, 합계 21만4천752개의 코가 매장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유재란 당시 종군한 일본 승려 게이넨의 말이 섬뜩하다.
“역사상 이번 전쟁처럼 슬픈 일이 없었다. 일본 병사들이 가는 곳마다 살육을 일삼았고 불을 질렀다. 그 연기는 고을마다 가득했다. 조선 사람의 머리와 코를 대바구니에 담으니 바구니가 가득했고, 병사들은 피투성이가 된 바구니를 허리춤에 달고 싸웠다.”
풍신수길은 조선 정복을 꿈꾸며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기도하기 위해 호코지(方廣寺) 절을 지었다. 조선 침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절 앞에 코무덤을 만들었다. 풍신수길의 잔학함을 미화하는 가증스러운 글이 비석에 있다.
“일본군이 적의 목을 베어 보내야 하나 너무 멀어 목 대신 조선군의 코를 베어 오게 했다. 히데요시는 이들을 원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가엽다는 생각으로 친한 사람 대하 듯 공양했다”고 적혀 있다. 이를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얄밉고 밉살스러운 일본인의 모습이다. 일본인의 잔혹성을 과시하고자 만들어 놓고 이를 호도하고 있는 그들은 오늘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인에게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풍신수길이고, 우리는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다.
주위 분들이 보기에 필자는 호남의 좌파다. 그러나 이제까지 속마음을 표현 안하고 살았다. 어떤 말을 들어도 쥐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그것은 내 생각이 틀려서가 아니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분위기를 얼어붙게 할 필요가 없어서다. 또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래도 좌파가 나라를 지켜온 것 아닌가? ‘호남국가지보장’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공중을 나는 새도 좌우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을 수 있다. 지역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정유재란도 동학혁명도 광주학생운동 5.18 민주화운동 등 한국 역사상 위기의 변곡점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행동으로 표현한 것은 좌파가 아닌가?
코로나19로 세계의 모든 나라가 패닉 상태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쉽게 종식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코로나19의 원인이 지구 온난화 등 환경문제와 인류가 만든 대도시 집중화가 위기를 부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유엔은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선언하고 2030년까지 목표를 달성하기로 선언했다. 그것도 우리나라 반기문 사무총장이 협동조합 정신으로 SDGs를 달성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협동조합은 물론 세계의 모든 나라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행동으로 나서고 있다. 1인의 백보보다 백인의 1보를 중요시하는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SDGs를 달성하고 지구촌의 환경을 개선해야 코로나19 문제도 해결하고 지구상의 인류도 생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즉 좌파우파가 아니라 상부상조의 협동조합 정신이 나라를 그리고 지구촌을 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이제 우리는 선후배 동지 간에 좌파우파 나누지 맙시다. 서로 돕고 존중하는 상부상조와 협동조합 정신을 이야기합시다.
7월 일본 아베 수상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는 한국인의 목줄을 죄는 것이다. 경제에서 반도체는 쌀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석유와 반도체 생산을 못하도록 차단한다면 우리의 목숨 줄을 죄는 것이다. 반도체가 쌀이고 기름이다. 그런데 그 반도체를 생산못하도록 수출규제를 하는 그 나라가 바로 우리의 이웃 일본이다. 그래도 우리는 내부에서 좌와 우가 나뉘어 200만? 300만? 거리에 모여 집회나 할 것인가?
우도 좌도 존경하는 어른 정치인,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거물 정치인의 탄생을 기원한다. 이것이 협동조합주의에 찌든 무지랭이 늙은이의 간절한 소망이고 고민이다.‘긍정의 사고’로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기를 바라는 주문이라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