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지조 지키며 13대째 살아
“350년 초가 보존못해 선대에 미안”

 

#10대조 죽와공이 세워

13대째 이어가고 있는 회와공 이규형의 고택. 지금은 종손 이재선씨가 30년전 개축하여 옛 모습을 잃었으나 선비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망호정의 회와공 이규형(1809~1878)의 종택은 망호천 둑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장엄하다. 이 종택은 행주형국으로 펼쳐져 그야말로 우리고장에서 길지요, 명당이라고 할 만하다. 인걸은 지령(地靈)이라는 문자를 떠올리게 한다.


필자는 수차 종택을 방문하면서 특히 종택의 안방에 걸려 있는 초가집 사진에 주목했다. 그야말로 선비의 지조를 닮은 아담하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은 종가의 모습이어서 늘 마음이 끌렸다. 회와공의 절조와 효행은 바로 이 초가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회와공의 종손은 이재선씨(77)이며 차종손은 경호씨(59세)씨다. 맏손자는 수관씨(28)이며 종손의 처가는 거창신씨의 집성촌인 이웃 영보리 송내마을이다. 그리고 차종손은 신북 모산의 문화류씨에게 장가를 갔다.


종손은 훤칠한 키에 대대로 이어온 선비형으로 품격있는 언행이 온몸에 풍긴다. 그는 일찍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봉직하다 정년을 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궂은일도 마다않고 일선 현장의 교육지원을 위해 심혈을 받친 청렴한 공복이었다.


종손은 일견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느낌도 든다. 종택이 몇 평이나 되느냐는 질문에 잘은 모르지만 2천평은 안되겠느냐고 되레 반문한다. 자신의 아파트가 몇 평이며 평당 얼마라고 으스대는 도회지 사람들이 들으면 부끄러워 할 말이다. 그는 이어 내심 궁금했던 종가에 관한 자료를 한아름 꺼내 보이며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다.


“종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걸어놓고 선조님의 모습을 대하듯 매일 예를 올리고 있습니다. 종택은 10대조인 죽와공께서 마련하여 이후 맏손자까지 13대가 이어왔으니 족히 340~350년이 된 셈이죠. 초가로 된 종가가 300년 이상 이어오는 동안 곧 쓰러질 위기를 맞자 30년 전 종손들이 모여 개축하기로 결정하고 선조님께 죄송스런 마음을 여러 날 고하고 제를 올린다음 헐게 되니 그때는 제가 몸살이 나 온몸에 열이 났어요. 정말 선대 할아버님들께는 지금도 초가를 보존하지 못한 것에 사죄합니다.”


#일족의 화합이 최우선

종가에서 종손으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언충신 행독경(言忠信 行篤敬)이지” 가문의 질서를 잡으면서 지손(支孫)들에게 두루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할 것을 생각하신 것 같다.


“봉제사 접빈객이 제일이지, 무엇보다 일족(一族)을 화합하는 일이 우선이지” 종가와 종손의 표상이라고 생각하는 종가에 와서 종손에 직접들은 종손의 책무 역시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결국 종가의 성패는 그 기본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인터뷰 내내 차종손 경호씨가 자리를 지켰다. 언제 봐도 온화한 모습이다. 그런데 시대의 풍기(風氣)에 이르자 단호한 어조로 개탄한다. 그 대안으로 궁리한 게 선대 조상께서 꿈꾸었던 언충신 행독경의 일환인 ‘선인(善人) 만들기’다.


차종손은 “어린시절을 증조부 록헌 이상대님으로부터 한문을 비롯한 가정교육을 받아오면서 감화를 받고 가훈을 체득해 왔다”면서 “증조 할아버지께서는 문장이 출중하시고 일생을 오직 학문에 뜻을 두고 제자를 많이 길렀다”고 말했다. 또 증조부께서는 평생 ‘소원선인다(所願善人多:소원은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를 말씀하셨다고 했다. 퇴계선생님이 한 말씀이기도 하다. 종손부자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적막한 종가에서 오늘도 부심하고 있는 듯하다.


차종손 경호씨는 한때 도시에 나가 사업을 벌이기도 했으나 귀농한 농업경영인이자, 마을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부터 ‘1사1촌마을’ ‘친환경농업’ ‘건강장수마을’ ‘농촌정보화시범마을’로 선정 받는데 큰 역할을 하는 등 전통문화마을 가꾸기에 몰두하고 있다.


“망호정마을이 인근 회문리, 송평리 등과 연계하여 대단위 농촌종합마을로 거듭나는 것이 앞으로 추진할 과제입니다”


조상과 옛 전통을 섬기며 ‘마을 가꾸기’와 ‘선인(善人) 만들기’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돋보인다. 새벽이면 종택을 세운 죽와공 할아버지를 참배하고 부모님의 침소를 아침, 저녁으로 살피는 그의 효심은 요즘 보기 드문 모습이다.   /명예기자단 자문위원=서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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