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그림의 대가 금파 강명구 화백 초서의 대가 취운 진학종 선생과 작품활동


부춘정에서 키운 예술혼

망호리 후정마을에는 부춘정의 추억을 안고 예술혼을 키운 화가가 있다. 바로 금파(錦坡)강명구 화백(74·사진)이다. 새해를 맞아 강 화백은 서울 종로구 경운동 국보갤러리에서 기획한 ‘12인 대작 초대전’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1월12일부터 오는 2월9일까지 갖는 이번 전시회는 한국 미술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중견작가 12명(강길원, 강지주, 김난옥, 김종상, 나정태, 박남재, 심명보, 양태석, 이태길, 정우범, 조동화 화백)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지방에 거주하면서도 국내에서 내노라 하는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수없는 전시회를 갖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화단에서는 이미 ‘소나무(松) 그림=금파’로 알려질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인 그의 작품은 솔거가 다시 되살아 나온 느낌마저 든다고 미술평론가들은 말할 정도다. 특히 대형 소나무 그림은 너무나 섬세하여 마치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기분과 새들이 착각, 부딪쳐 떨어질 것 같은 실감마저 느끼게 한다고 평하고 있다.

그의 이런 작품성은 초서(草書)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취운 진학종 선생이 1991년 처음으로 그에게 작품을 함께 하자고 요청해와 지난해까지 여섯 차례의 전시회를 갖고 올해도 지난 1월 28일부터 이달 6일까지 서울시 서초동 서울고등학교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등 주요 인사들이 참관한 가운데 일곱 번째 전시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취운 선생의 초서에 금파 선생의 소나무 그림을 넣어 만든 대작(600호)은 수천만원에 팔릴 정도로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고가에 사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때문에 전시 기획자나 갤러리 측에서는 서로 앞 다퉈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고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중·일 3국을 통틀어 마지막 남은 초서’라고 평가받는 취운 선생이 금파와 함께 20여년 가까이 동반자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개발한 것을 높이 사고 있기 때문이다. 취운 선생도 독학으로 서예에 정진, 오묘한 경지를 개척한 이 시대, 마지막 초서 서예가로 유명하다.

금파 강명구 화백이 그린 소나무에 취운 진학종 선생이 초서로 쓴 작품. 600호의 대작인 이 그림은 1991년 정계의 거물급 인사가 고가에 사갔다.

지리학·사주·작명에도 뛰어나
이처럼 금파 선생이 국내 화단의 거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목받는 화가로 성장했지만 그의 지나온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수도승이 행한 고행(苦行)과 같은 것이었다. 영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 2학년도 채 마치기 전에 6·25를 만난 그는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학교로 돌아갔지만 다시 복학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밑으로 동생이 다섯씩이나 있었고, 샛거리(빚)를 제때 갚지 못하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장남으로서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효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당을 다녔다. 그리고 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러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인장업을 시작했다. 붓글씨와 수학에도 뛰어났던 그에게 공작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영암군청 앞에 점포를 얻어 도장 파는 일을 보면서 우연찮게 영암문화원에서 주최한 그림대회에 작품을 냈는데 우수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틈틈이 혼자서 그림공부를 하다 몇 년 후 또 한국문화예술대전에서 은상을 받았다.

이후로 그는 취련 허의덕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3년쯤 배울 무렵, 갑자기 스승이 돌아가시고 나자 곽남배, 이창주 선생 등을 만나 그림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을 쌓으며 그림공부를 했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시작한 그림공부는 그의 천부적인 소질에 힘입어 10여년 만에 각종 대회에서 17~18회에 걸쳐 상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광주미술협회장의 추천을 받아 한국미술협회 정회원이 되었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도 국전에 상을 받지 못하면 회원가입이 어려웠지만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그에게 회원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그에겐 그림 외에도 사주, 작명, 이술, 지리학 등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평생을 풍수지리에 전념해온 김사현(94) 선생에게서 처음 지리공부를 시작한 그는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면 전날 보았던 것을 반복하여 기억하고 정리해둔다고 한다. 그리고 책과 옥편을 항상 곁에 두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의 이런 노력은 때론 영적인 계시를 받기도 한다. 또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면 어떤 사물도 영화를 보듯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는 것이다. 지리학 공부는 그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후손들이 별 탈 없이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낮추며 마음만큼은 부자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짚어 보게 한다. /문배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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