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렬·군서면 출신·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정치학 박사)·동아일보사(동아방송) 기자-여성동아부 차장·동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학과장·가천의과대학교 경영대학원 원장
새해 새로운 희망을 품고 출범하는 새 정권의 이명박 당선인이 관료주의 타파와 발상 전환의 상징으로 영암의 대불산단 전봇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자 언론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10여년전, 서울 여의도에 직장이 있던 필자는 고향에 들렀다가 대불산단을 지나가던 길에 산속의 나무들처럼 서 있는 전봇대를 바라보며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 공장도 없는 허허벌판에 전선이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어지럽게 이어진 전봇대만 수백여개가 즐비하게 늘어 서 있어 옹색한 고향의 초라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특히 전선이 지상에 전혀 없는 여의도의 시가지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공장 부지에다 전봇대를 전시하듯 늘어놓은 한심한 광경에 호남푸대접을 체감했다.

그동안 영암은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조선소 등이 들어서며 많은 변화를 겪고 있어 대불산단의 전봇대를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대통령 당선인 한마디로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이 ‘전봇대의 추억’이 떠올랐다.

이 당선인은 지난 1월 1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간사단회의에서, 2006년 9월 대불산단 방문 때 공단 진입도로 한 쪽의 전봇대가 대형 차량이 커브를 도는데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는 것을 봤는데 아직도 그대로 있다며, 산자부에 물어봤더니 “도(道)도 권한이 없고 목포시도 권한이 없고 산자부도 권한이 없어···”라며 관료주의의 폐해와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 당선인이 지적한 이틀 뒤인 20일 대불산단 전봇대는 3m 떨어진 도로 밖으로 옮겨졌다. 그 전봇대를 옮기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5시간. 2003년부터 계속되어온 공단 입주업체들의 민원이 이 당선인의 말 한마디에 해결된 것이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복지부동, 탁상행정의 표본으로 권력자 말 한마디에 공무원들이 얼마나 민감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도도, 시도, 산자부도 권한이 없다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옮겨졌을까? 서글픈 21세기 선진한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현지 공단에서는 600개쯤의 전봇대가 아직도 건재한데, 두 개 옮겨 5년 숙원 해결했다고 하는 일부 언론보도에 의아해하며 생색내고 끝낼까 더 두려워하고 있다고 한다.

대불산단은 원래 기계·조립금속 등 일반 산업단지로 조성되어 전봇대는 문제가 없었는데 2000년 이후 조선산업 클러스터로 자리 잡으면서 대형의 선박블록 공장들이 들어와 문제가 생겼다. 승용차로 1분에 갈 거리를 한 시간 걸리고, 아예 전선을 끊고 통과한 뒤 다시 회사돈으로 복구하기를 반복했다. 문제가 된 전봇대를 없애고 전선을 땅에 뭍는데만 100억여원 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결국 문제는 예산이다.

대불산단은 선박블럭 공장이 들어설 정도로 도로구조가 견고하지 않아 전신주 몇 개 뽑아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도로 폭을 아예 넓혀 교차로에서 회전이 용이하게 확장해야 하고 갯벌을 매립해 급히 만든 노반도 수백톤의 무게를 견디도록 다져야하며 하중을 버틸 수 있게 교량도 고쳐야 한다. 당선인의 전봇대 발언을 조중동 일간지들이 마치 대단한 민원을 해결한 것처럼 5년 동안 뽑히지 않는 전신주를 5시간 만에 뽑았다며 홍보했는데, 그 전신주는 뽑으나 마나 한 전신주라고 현지인들은 볼멘소리다.

영암군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2천616억원이 소요되는 대불산단 리모델링 사업계획을 제안했다니 입주자들의 민원이 조속히 해결되길 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관료주의 상징으로 지목한 대불산단 전봇대를 뽑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속 전봇대를 뽑는 일이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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