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순인데 북경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다행이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서는 생각보다 견딜 수 있다. 북경공항은 대부분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북경 인근에 있는 만리장성과 자금성, 이화원과 정릉 등을 관광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이것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는 관광객들은 중국의 외화수입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북경은 2008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세계인들에게 중국을 보여 주고, 경제특수를 노리기 위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북경은 공항이 가까운 남부지역은 초라하나, 북부지역은 서구풍의 현대적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시민들이 생동감이 있어 보여 잃어버린 중국의 자존심, 잃어버린 중화사상을 재현하기에 충분다고 여겨진다.

19세기 중반까지는 동양의 대국으로 자임하면서, 동양의 호랑이로서 군림하던 중국이 계몽사상과 산업혁명을 거친 서양에게 무릎을 꿇고 종이호랑이가 되고 말았다. 중국은 영국과 불란서에게 아편전쟁에서 두 번이나 패하고 홍콩과 구룡반도를 영국에 할양해야 했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2억양의 배상금과 강제로 4개 항구 개항을 시발로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의 시달림을 받아야 했던 치욕의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이 근년에는 매년 8~9%의 고도성장을 하고 있으나 1인당 국민소득이 2천불을 밑돌아 중국인들이 한국관광객을 상대로 “단돈 천원”을 외치며 물건을 파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종주국’으로 군림했던 면모는 발견할 수 없고 측은한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치욕의 역사는 어쩌면 중국 왕들의 통치행태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문화유산인 만리장성, 자금성, 이화원, 정릉, 여산능의 건축이면에는 왕들의 폭정에 따른 백성들의 원한이 담겨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왕권의 강화와 왕들의 유락, 사후세계를 위해 조성했을 뿐, 백성들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리장성의 가장 높은 지점이요, 모택동이 올랐다는 해발 888m의 팔달령 정상에서 관광객들은 탄성을 지른다. 산 능선을 따라 꿈틀거리는 용의 몸체와도 같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장성은 북쪽 흉노족을 비롯한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했다. 그 길이가 6천킬로미터, 높이가 8.5미터이니 인류 역사이래 세계제일의 토목공사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동원된 사람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죽은 사람의 숫자가 100만 여명이라는 기록이 있고, 노역하다 쓰러지면 현장에서 성벽에 묻어버렸다고 하니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했는가 짐작할 수 있다.

진시황은 만리장성만 쌓은 것이 아니라 수년전에 발견되어 세계인들을 소름이 날정도로 경악케 했던 자신의 저승궁전인 여산궁을 만들고, 아방궁을 지었다. 그래서 진나라는 북방의 흉노족 등의 침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농민의 반란과 조고 등 간신배에 의하여 15년 만에 멸망했다.

청대말 서태후는 군함 건조예산을 전용하여 그 거대한 인공호수를 이화원에 만들어 유락에 빠졌고. 명대의 저승궁전인 정릉은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이 때문에 명나라도 청나라도 멸망했다.

자금성은 천안문에서 시작하여 두 시간은 걸어야 후문에 도착할 수 있으니 세계제일의 궁궐이요, 과대포장의 극치라 하겠다.

이처럼 중국문화유산들은 그 후예들이 외화벌이에 활용하고 있으나 실용성보다는 확대 지향적이요, 위협적인 성격이 강하여 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을 외면하고 민본주의에 바탕을 두지 아니한 나라는 멸망하였다. 우리도 조선조말 몇몇 성씨들의 국정농단으로 나라를 잃은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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