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열무정 사정(射亭)건물.
(20)閱武亭(열무정) : 영암읍 동무리에 현존하는 건물로, 일반인이 무술을 익혔던 곳이다. 경내에는 활쏘기를 익히는 射場(사장)도 있다. 열무란 원래 임금님이 직접 군대를 사열하였다는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우리 영암읍에서는 가장 유서 깊은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1535년 중종 30년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확실한 문헌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영암의 호족들이 이곳에서 사포계를 조직하여 활쏘기의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 전통은 끊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필자의 기억에도 일제 강점기였던 1935년~1945년 무렵에 영암읍 대신리의 박병탁, 동무리의 임동근, 회문리의 조병균, 춘양리의 조철환, 역리의 김학룡, 회문리의 조희우 어르신 등 한 예닐곱 분들이 거의 매일 같이 활쏘기를 연마했다. 이 분들은 목포까지 활쏘기 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고, 입상한 날은 열무정 마루에서 기생들을 불러놓고 주연을 베풀면서 춤을 추고 여흥을 즐기는 모습을 몇 차례 목격하기도 했다. 이처럼 열무정은 관아 하고는 무관한 영암고을 사람들의 무술의 도장이라고 볼 수 있다.

(21)秋矯(추교) : 예전이나 지금이나 흔히들 ‘추더리 다리’라고 불려지는 교각으로, 이곳을 기점으로 왼쪽으로는 덕진면 영보리 길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장암리로 통하며 중간에 대신리 동네가 있다.

(22)五里店(오리점) : 현 버스정류장에서 강진 방향으로 200미터 거리에 있는 도로변 상점으로, 춘양리에 거주하는 최방길씨의 선친이 운영했다.

(23)如友內店(여우내점) : 회문리 1구 다리 너머 약 100미터 지점의 길가에 있었던 상점이다. 김희규 전 영암문화원장의 선친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처럼 조선시대 말에는 거의 모든 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므로, 물건 파는 상점은 극소수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인들이 이주해와 시내 중심가를 중심으로 상가를 형성하고 상권을 독점하였다. /영암신문 명예기자단 자문위원=조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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