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깊은 ‘부춘정’ 옛 추억 남기고 기억속에 사라져
주변 뛰어난 경관 만남의 장소…군, 올해 보수공사

 

마을어귀에 진주강씨가 세워

추억이 서린 영암읍 망호리 배날리 마을 어귀에 있는 부춘정. 덕진강변에 들어선 이곳은 주변 경관이 뛰어나 마을의 쉼터이자 각종 행사장으로 활용돼 왔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경관이 좋은 물가에는 으레 정자가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암읍 망호리 배날리 마을 어귀에도 부춘정(富春亭)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옛 영화(?)를 뒤로 한 채 울타리도 없이 썰렁한 모습이지만 한때는 영암의 명소로 각광을 받았다.


특히 이곳 부춘정은 우리영암 문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삶의 멋과 여유, 그리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생활철학이 깃든 유서 깊고도 추억이 담긴 곳이다.


강진에서 영암으로 입향한 진주강씨 선조들이 마을 어귀에 세운 부춘정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활공간이었다. 규모가 크지 않아서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하고, 계단이 허술해 오르는 것이 좀 불편하지만 사방이 확 트인 주변경관, 특히 월출산과 덕진강을 막힘없이 바라볼 수 있고, 잡다한 생활로부터 잠시 떠나 마음이 통하는 벗과 함께 청담(淸談)을 나누거나 홀로 풍류를 즐기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부춘정 터를 이루고 있는 부춘봉은 그 아담한 모양에 더해 녹색 짙은 송백녹음이 바람소리(松聲), 그림자(松影)를 자아내고, 덕진강 물이 소(沼)를 이루어 그 위로 화강암 절벽이 기이하다. 물외한객(物外閑客)들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위에서 헤엄치는 고기떼를 셈할 수 있는 곳, 여름이면 인근 어린이들의 물놀이 피서지로 제격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일상에 지치면, 시원한 솔바람이 그리워 부춘정에 오르곤 했다. 그곳에는 뜻이 통하는 벗이 있어 청담을 나누니 더욱 좋았으리라. 누에와 삼베농사 작황을 서로 묻기도 하고 벼농사를 꾸리며 날씨를 헤아리고 계절을 따지기도 했으리라. 마음이 허전하고 몸 또한 나른해지면 그 자리에서 너나할 것 없이 목침을 베고 낮잠 속으로 빠져든다. 그 꿈결 따라 들려오는 하동(夏童)들의 물장구 소리에서 멀리 있는 늪 속의 물고기들이 떼지어 노니는 것을 상상하고 바람결에 실려 오는 꽃향기를 맡고 하루해가 깊어 잠을 문득 깨닫는다.


부춘정은 강(姜)씨 문중모임, 대동계, 마을회의 등 회의장소로 뿐만 아니라 서당 등 강학장소로, 오가는 이의 쉼터로, 화전놀이터·단오절 행사장소 등 갖가지 생활공간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부춘정은 세월이 지나면서 덕진강이 점차 제구실을 잃고 하천범람에 의한 직강공사로 주변환경이 크게 바뀌면서 정자와 주변 소나무가 옛 영화를 웅변해 줄 뿐이다.

 

역사적·학술적 가치 높아

부춘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전면(前面)을 벽이 없는 마루로 하고, 배면(背面)을 벽으로 막힌 방(室)으로 처리하여 전후가 대칭적으로 처리된 특이한 구조다. 건축 전문용어로는  전후병렬식 겹집이라고 일컫는다. 내부가구 구조는  쌍 ‘ㅅ’자 형으로 짜여있고 주심도리, 중도리, 종도리가 있는 5량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특히 본건물의 5량 가구 구조의 중도리가 대청마루 상부의 중도리가 되어 3량 가구 구조의 형식을 취하고 인접한 방 상부도 동일한 방식을 취하여 2중적 가구수법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한국의 전통건축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예라고 한다.


또한 기둥의 설치기법 등에서 옛 기법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춘정이 세워진 시기도 19세기 중엽(1865년경)으로 추정되어 연대도 오래된 편이다. 원래 건립시기는 조선시대 광해군 10년(1618년경)에 건립한 것으로, 1672년 이후 몇 차례 중수를 했다. 안쪽이 전부 방(室)으로 구성된 구조로 보아 단순한 정자로서의 기능 보다는 서재와 학숙으로서의 기능도 함께 고려했음을 짐작케 한다.


이처럼 건축물 구조의 희귀성 등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평가되면서 지난 2005년 7월 13일자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4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영암군에서는 올해 군비를 포함, 도비지원을 받아 일부 보수공사와 함께 꺼진 기와를 교체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부춘정기(富春亭記)에 기록된 유적자료는 정자의 주인으로 알려진 청암(淸菴) 강한종(姜漢宗:1563~1618)이 지은 원운(原韻) 한 수와 판서·참판 등 고관대작들의 남긴 시가 여러 편  있다. 이 중 사인(舍人) 민덕봉(閔德鳳)의 시 한 수를 여기에 옮긴다.


輿地勝區說比峯(여지승구열비봉)

萬千氣像一湖中(만천기상일호중)

岳陽風景相高下(악양풍경상고하)

詩欲爭雄愧杜公(시욕쟁웅괴두공)

            

하늘이 주신 이 땅위에 아름다운 봉우리

만가지 기상이 한 호수에 서렸어라.

산기운 풍광이루어 여기저기 맺혔으니

청암공은 뜻을 이르고 나는 시심으로 보답코져하네.  

 

<다음호에 계속>    /명예기자단 자문위원=서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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