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웅 ·군서면 서구림리 출생·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강사·계간 문학춘추 편집인·주간·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현)·전라남도문인협회 회장(현)
저희가 딸을 시집보냅니다. 이웃들의 혼례 때에는 별 생각 없이 축하하러 다녔었는데, 막상 저희 대사가 되고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동안 예식장에 다니면서 느꼈던 몇 가지를 놓고 내외간에 의논을 거듭했습니다.

먼저 일요일에 혼사를 치를 것인가로 고민했습니다. 한 주일의 피로를 말끔히 씻을 알뜰살뜰한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는 것은 아닌지? 생각 끝에 토요일을 택했습니다. 다음으로 식사 대접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잔치에는 당연히 음식이 우선이겠지만 그 동안 경험에 비추어보면, 혼주 뜻과는 달리 식당 측의 푸대접이 심해서, 또 형편상 축의만 표한 분께도 서운해서 답례품으로 대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첩장을 내야하나, 낸다면 몇 장을 내야하나로 고민했습니다. 옛날에는 십시일반으로 큰일을 치르는 것이 미덕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첩이 너무 많아 외려 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되도록 그 대상을 줄일 수 없겠나 고민했습니다. 남들도 다 하는 혼례식에 괜시리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아닌지 망설이면서도, 이는 평소 저희가 새기고 있던 목소리라는 주제넘은 생각에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이런 너스레 끝에 결국은 조심스럽게 청첩장을 내기로 하였습니다. 저희 내외의 조그만 생각들을 너그럽게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청첩 내용>

·신랑 유정일·이정숙의 셋째아들 유영설(2포병여단 포대장)

·신부 조수웅·정오희의 고명 딸 조가비(임자남초등학교 교사)

·주례 이왕복(대전유성고등학교 교사·신랑 고등학교 때 은사)

·때 2007년 11월 11일(토) 늦은 3시

·곳 광주시 서구 화정동 교원공제회관3층 예식장

저희 딸 혼례를 무사히 치르고 나서 삼가 감사말씀을 올립니다. 평소 저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확고한 의식을 갖고 제 방식대로만 살면 그게 보람찬 삶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적당히 얼려 사는 것은 세속화를 부추길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제 길로만 치달았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를 여우는 순간에 “그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60이 넘은 나이에 새삼 인생을 배운 것입니다. “이웃이 이렇게 좋구나. 도움이 이렇게 절실하구나. 상부상조가 이렇게 감동적이구나”라며 느꼈습니다.

제 아내의 한 친구는 이틀간이나 저희 집에 머물면서 이바지를 장만하고 혼수를 준비하는 등 마치 자기 일이나 되는 양 혼신의 힘을 다하였습니다. 또 어떤 친구는 잔치에 쓸 김치를 정성껏 담아왔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한복을 맞춰주거나 떡을 준비해 준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어느새 대사를 준비하고 치렀는지 조차 모를 지경입니다. 서울서 부산서 인천서 여수에서 임자도에서 도처에서 소중한 약속도 뒤로 한 채, 불원천리 달려와 준분까지 합한다면, 감사의 감동은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청첩을 안했는데도 기어이 와주신 분들, 형편상 오시지 못했음 그만인데, 우편으로 또는 인편으로 축의를 표해주신 분들에 이르면 그저 유구무언일 따름입니다. 제가 40년 넘게 국어선생을 했는데도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말 밖에 떠오르는 어휘가 없습니다. 그나마 이 감사함을 고이 간직하며 살겠다는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첫눈이 내리겠지요. 그때 소년소녀 시절로 돌아가서 저희 부부는 수북이 쌓인 눈밭에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합창하렵니다. 세상은 참 살만한 것이야. 그렇고말고. 세상은 감사 투성이야. 아믄. 2007. 11. 14

-고명딸을 시집보낸 조수웅·정오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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