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웅 ·군서면 서구림리 출생·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강사·계간 문학춘추 편집인·주간·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현)·전라남도문인협회 회장(현)
우리 차 바꿉시다. 9년이면 많이 탓잖아요.
아직도 잘만 굴러가는디.
친구들은 다들 새 찬데, 우리만 뭐예요. 써금써금한 엑셀 타고.
아 참, 가고 싶은 데까지 타고 다닐 수 있으면 되는 거지. 뭐 그리...
살면 몇 천년을 더 산다고 그래 쌌소. 우리도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어라우. 사고 싶은 것 사고 삽시다. 거.
그래그래 알았어. 새 차만 사면 되는 거지.

종철이는 마누라의 성화에 못 이겨 할 수없이 새 차를 주문하고 말았다.

꼭 한 달 반이 지난 뒤, 깜찍하고도 산뜻한 보라색 티코 한 대가 종철이 집에 배달되었다.

새 차를 샀다고 신명나 하며 마당으로 뛰쳐나오던 마누라는, 새 차를 보자마자 얼굴이 똥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천근 입을 다물고 만다.

여보 티코가 얼마나 좋다고 그래. 주차하기 편하지. 골목길 빠져나가기 제격이지. 그래서 시장보기도 얼마나 편하겠어. 그리고 어디 가나 골치 아픈 그 주차문제도 해결이라고. 곧 있으면 티코만 개구리 주차를 허용할 거래. 어디 그뿐인가. 고속도로 주행료도 반값, 공용 주차장 주차료도 반값, 무엇보다 자동차세가 십만원 안짝에다가, 기름값이 큰 차 사분의 일 값이라니까. 거기다 얼마나 귀여워. 그리고 우리는 국민차 타기 시민운동의 일원이 되는 거라고. 종철이는 정신없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 당신은 시민운동가가 되어서 좋겠소.

종철이 마누라는 어진간한 일에 화를 내는 법이 없었지만, 그리고 늘 양보만 하고 살아왔지만, 저런 식으로 한 마디 내뱉고 마는 마누라는, 돌이킬 수없는 화가 나 있다는 신호임을 종철이는 익히 알고 있다. 종철이는 순간, 자동차 한 대 가지고 백발이 성성하도록 금실이 좋다고 소문 난 부부 사이를 자동차 한 대 때문에, 갈라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티코를 주문한 일을 일방적으로 백배 사죄하고 통사정한 끝에 티코는 종철이 용으로 하고 마누라 전용 쏘나타를 사기로 했다. 그러니까 종철이 티코 작전은 완패로 돌아갔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진남색 쏘나타쓰리 한 대가 종철이 마당에 당도하였다. 그제서야 마누라는 환한 얼굴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종철이는 출근하려고 티코를 찾았다. 티코가 보이지 않는다. 마누라도 온 데 간 데 없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출근 시간을 맞추려고 할 수 없이 새로 산 쏘나타 쓰리를 몰고 나섰다. 종일 찜찜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발걸음을 재촉하여 퇴근하여 보니, 마누라도 티코도 얌전이 집에 있었다.

여보 어떻게 된 거야. 당신 뜻대로 쏘나타를 샀는데 아직껏 심통이 안 풀린 거야 뭐야. 당신 지금 데모하는 거야.

마누라는 그저 어린애처럼 방긋 웃고만 있다. 종철이는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여보 30년이 넘도록 나랑 살아왔으면서 내 진심 하나 모른단 말이요. 서운하네요.

뭐가 서운해. 단박에 쏘나타를 사주지 않았다고 지금도 서운한 찌꺼기가 남아 있다 이 말이어 시방.

그래요. 당신.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고, 신세대 세상이 되어 이제는 남녀평등사회라고, 남편은 티코 타게 나두고 나만 쏘나타 타고 뽐내며 다닐 수 있겠어요.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 했어요. 당신이 쏘나타 타세요. 그리고 부부동반 모임이 있을 때면 우리도 당당히 쏘나타 앞세우고 갑시다.

‘아내의 진심, 아내의 진심’ 종철이는 속으로 한 없이 되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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