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복전·도포면 목우동 출생·법무부 연구관·대구소년분류심사원 원장·청주미평고등학교 교장·경기대 겸임교수 역임·현)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현)수필작가 등으로 활동
3천~4천도의 고열을 일으키면서 광풍을 동반한 원자폭탄이 일본 나가사키 상공에서 떨어졌다.

살찐 남자(Fat Man)라 이름 붙인 이 원자폭탄은 폭음을 내면서 섬광과 함께 버섯과 같은 먹구름을 만들었다.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인류 역사상 두 번째 발생한 사건이다. 이로인해 나가사키 인구 21만명 중 15만명이 죽거나 원자병에 걸려 평생을 신음해야 하고, 나가사키 시내가 잿더미가 되는 순간이었다. 3일전에는 히로시마에 작은 소년(Little boy)이라 불리는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일본천황 히로이토가 무조건 항복을 결심해야 하는 사건들이었다.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는 말은 종교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로, 이는 국제관계에도 적용된다. 일본은 2차대전 중 2천만명이 넘는 아시아인을 살상했다. 이 원혼들이 어찌 일본을 저주하지 않겠는가! 원자폭탄 2개로 그 죗값을 치룬 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일본은 패전 후 속죄하는 양 평화헌법을 만들어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침공하거나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지 않는다고 천명하였다. 또 원자폭탄이 떨어진 중심지역인 나가사키시 우라가미에 평화공원을 만들었다. 필자는 이 공원을 영암의 지인들과 답사한 바 있다. 그런데 우라가미 평화공원이 있는 이 지점은 사형장을 갖춘 나가사키 교도소 우라가미지소가 있던 곳이다. 약 2만평의 공원부지 지하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질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기 위한 자료실이 을씨년스럽게 조성되어 있고, 지상에는 위령비와 평화를 상징하기 위한 기념동상이 세워져있다. 교도소의 사형장은 흔적만 남아 있고, 인근에 있던 8천명의 천주교 신도가 죽어간 성당은 신축하여 상처를 씻은 듯 했다. 그런데 평화 기념동상은 너무 힘이 넘치고 우람하여 평화를 상징하는 동상으로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필자가 우라가미 공원으로부터 느끼는 전체적 분위기는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가 아닌 원자폭탄의 피해국가라는 인상을 짙게 했다.

그 징후는 아베 현 총리가 재무장을 골자로 헌법개정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추진하고 있다. 2중적 국민성을 가진 일본은 상대방에 비하여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그에 굴종적이라 할 만큼 저자세를 취한다. 반대로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을 느끼게 되면 빠르게 공격적인 자세로 돌변하는 국민이라는 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은 2차대전에 패한 이후 강대국 미국의 그늘에서 베트남전쟁부터 이라크전쟁까지 미국의 군사·외교정책을 지지하는 선봉장이 되었고, 핵우산에 의존해왔다. 전 일본총리 고이즈미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시 앞에서 “당신이 필요해요, 당신을 사랑해요”를 열창하면서 일본다운 굴종적인 자세를 보였다.

반면, 자기네들보다 저개발국인 주변국들과는 계속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와 중국 등이 요구하는 특급전범을 포함한 246만명의 영혼을 안치한 야수쿠니 신사참배 중단을 묵살하고, 종군위안부 문제 사과를 거부하며, 731부대의 생체실험에 관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위와 같은 사례들은 일본이 보여주는 2중적 국민성의 표본이라 할 것이다. 또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은 명성황후 살해사건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는 한·일 관계가 원만하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독일은 1951년 아데나워 수상이 2차대전 중 전범국가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후 지금까지 나치전범 2만명을 독일 스스로 처단했기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8월은 광복절과 을사늑약 국치일이 중복되어 우리 국민의 가슴에 명암이 교차되는 달이다. 일본은 빠른 시일에 우리가 그들을 용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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