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웅 ·군서면 서구림리 출생·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강사·계간 문학춘추 편집인·주간·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현)·전라남도문인협회 회장(현)
종철이와 막철이는 사촌 간이다. 또 이웃에 산다. 그리고 같은 반이다.

그 중 어느 조건이 제일 크게 작용했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둘이는 꽤 친하다. 그래서 방과 후 숙제를 같이 하거나 온갖 놀이를 함께 하는 것 외에도 가끔씩 일 학년치고는 꽤 심각한 이야기도 꺼낸다. 오늘의 화두는 고모다. 종철이 고모는 서른아홉인데 읍내 내과의원 원장 사모님으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잘 기르는 성공한 중년이고, 막철이 고모는 마흔 한 살이나 되는 노처녀인데, 지금도 농민운동인가 뭔가를 한다고 경찰서만 들락거리는 골치 아픈 중년이다.

“막철아, 우리 고모가 접때 와서 그러는디 네 고모가 자기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넌 우리 고모 말을 어떻게 생각해.”

“아니, 그게 무슨 소리라니? 우리 고모가 돈이 있냐. 남편이 있냐. 자식이 있냐. 그 나이 먹도록 자기 집도 없어서 우리 집에 얹혀사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야.”

“우리 고모가 그러는데 훌륭함이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거래. 뭐라더라. 얼마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냐. 거기다 얼마나 다른 사람을 위하며 사냐. 또 얼마나 옳은 일을 하고 사냐. 그런 거래.”

“얘는 점점… 우리 고모는 너희네 고모처럼 우리에게 비싼 옷, 고급 신발을 사다주는 좋은 일도 못하고 용돈도 주는 일이 없으며, 외려 우리 어머니한테서 돈을 타가는 걸.”

“야 곰아 그걸 낸들 모르냐. 우리 고몬들 모르것냐. 그런걸 다 아는 고모가 왜 자기보다 너희 고모가 더 훌륭한 삶은 산다고 했겠냐 그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나는 도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고모는 할머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기는 강심장을 갖고 있거든.”

“그래 그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고모는 내보기에 자기 고집을 부리며 살기는커녕 외려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것 같기도 하거든. 고숙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그밖에 사람에게도 큰 소리 한 번 치는 걸 못 봤으니까 말이야.”

“어른들은 그걸 얌전해서 그런다고 해 버리더라고.”“글쎄?”

“어른들의 삶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러고 보면 우리 고모 말이 맞는 것도 같아, 즉 겉으로 들어 난 것만으로 훌륭함을 말할 수는 없는가 봐.”

“그럴까. 그렇다면 왜 어른들은 돈 많이 벌고, 고급 아파트 사고, 외제 옷 사 입기를 좋아하고 또 한 쪽에서는 그것을 뽐내며, 다른 쪽에서는 그것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그리고 경로원이나 고아원에 뭐를 갖다 주거나 가서 뒷바라지 해주는 일은 뽐내거나 부러워하지 않을까. 또 왜 부자들은 그런 데 가기를 꺼려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곧 잘 가는 것일까.”“낸들 아냐.”

“어쨌거나 겨울은 다가오는데 거기 사람들은 춥지는 않는지. 먹을 것은 넉넉한지. 돌보아주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지. 걱정이다야.”

“또철아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꺼내놓고, 왜 그런지 알아내지 못한 적이 거의 없지 않느냐. 우리끼리 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할 바에야 우리 읍내로 가서 고모님께 물어보자.”

“종철이 너 뭐든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버릇 지금도 여전하구나. 너 유치원 땐가 하늘 끝이 어디냐고 통파고 묻다가 종내는 네 어머니한테 혼짝난 생각 안나? 이번에는 네 고모한테 혼나면 어쩌려고 그래.”

“아니야, 우리 고모는 결코 야단치는 분이 아니라고 그랬지. 우리가 끈질기게 물으면 알아듣도록 쉽게 풀이해서 설명해 줄 거야.”

“내가 어른들 하시는 말씀을 훔쳐 듣기로는 신자유주읜가 시장경제 원린가 그런 세상에서는 돈 잘 버는 게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했는데, 너희 고모는 그걸 어떻게 설명하실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야.”

“그러니까. 더더욱 고모한테 가봐야 하지 않겠어?”

“그렇긴 하다마는, 어쩐지…산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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