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웅 ·군서면 서구림리 출생·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강사·계간 문학춘추 편집인·주간·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현)·전라남도문인협회 회장(현)
연대장 이 대령은 참으로 괴팍했다. 또 변덕도 심했다. 자기보다 한 계급 낮은 말똥 두 개짜리 예하 대대장들을 쫄병들이 보는 가운데 쪼인트를 까지 않나. 완전 군장으로 선착순 연병장 돌기를 시키는 것쯤은 숫제 다반사다. 한 마디로 성질 더럽다. 똑같은 영관 장교들을 이 모양으로 다루는데, 위관 장교들 수모야 더 말할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항상 그림자처럼 수행해야 하는 그의 부관 최 중위는 딱 죽을 맛이다. 특히 일과 후 술판이라도 벌어진 날에는 도저히 살맛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최 중위는 거의 본능적으로 이 대령 비위를 맞추기 위한 갖가지 묘안을 짜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대령이 제일 좋아 하는 말은 ‘장군’이라는 칭호다. 대령이라면 누구든 장군이 꿈이기에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이 대령은 대령 8호봉이라, 자칫 계급정년에 걸릴 지경이서 더욱 그런지 모른다. 그 날도 좋게 술을 먹던 이 대령은 무엇에 비위가 거슬렸는지 인사불성으로 화가 나 있었다. 최 중위는 “이제는 죽었구나”하고 벌벌 떨다가 얼른 임기응변을 해낸 것이다.

“연대장님 고정하시고,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십시오. 유명한 나폴레옹 대장이 유럽 천지를 통일하기까지에는 그 예하에 매우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장군 하나가 있었는데요. 그 지장(지혜로운 장군) 이름이 바로 리파똥 장군이었답니다. 연대장님이야말로 바로 그 리파똥 장군이십니다. 저희들은 이제부터 연대장님을 리파똥 장군으로 부르겠습니다.”

부관 최 중위의 꾀는 신통방통하리만치 이 대령을 만족시켰다. 아무리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부하들을 곧 잡아먹을 태세인 이 대령일지라도 “리파똥 장군님!” 한 마디면 분위기는 순간 반전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 연대원은 영관 장교, 위관 장교, 부사관, 병 가릴 것 없이 연대장이 보였다하면 벽력같은 소리도 “리파똥 장군님!”을 외치곤 하였다.

ROTC 출신인 최 중위가 가다리던 제대하는 날이 다가왔다. 관례에 따라 연대본부에 송별회식이 벌어졌다. 그때도 여기저기서 ‘리파똥 장군님’을 부르는 소리가 빗발쳤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어지간이들 취기가 오를 무렵, 작전장교가 “리파똥 장군님!” 하고 부른다는 게, 술이 과한 탓인지 그만 거꾸로 “똥파리 장군님!”이라고 부르고 말았다. 좌중이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일순 고요해졌다. 리파똥 장군은 장승처럼 자세가 굳어지고 최 중위는 안절부절 못했다. “이제 최 중위는 죽었구나”하고들 생각하고 있을 즈음, 순간 ‘땅’하고 총소리 한방이 울려 퍼진 환각상태로 모두들 빠져들었다. 확실히는 몰라도 아마 과음 탓이었을 게다.

그 환각상태가 적중이라도 하듯, 최 중위가 제대하고 난 20일 후에, 의문사로 보이는 시체 한 구가 부대 뒷산에서 발견되었다. 살인사건 현장에 범죄수사대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죽은 사람은 누구며, 언제, 어떻게 죽었는가” 주검의 상태를 점검한 수사관들의 ‘죽음의 시점과 원인’에 관한 이견들이 분분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까지 동원한 그들은, 결국 속 시원한 수사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댄가. 인간배아 복제도 해내는 첨단과학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의문사 하나를 밝혀내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두다니 말이 되는 소린가. 기어코 죽음의 시점과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 죽음의 상태를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은 첨단과학수사가 아니라 바로 똥파리라는 곤충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10분도 안돼 똥파리가 몰려들고, 그 중 암컷은 죽음의 어두운 내부나 밑바닥에 알을 낳는다. 이렇게 파리가 알을 낳는 순간부터 법곤충학에서는 사후 경과시간 추정 단서가 되는 ‘생물학 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똥파리의 알이 부화해 구더기로 변하고, 구더기는 번데기로, 번데기는 껍질을 남긴 채, 성충으로 바뀌는 변태과정, 즉 ‘생물학 시계’의 ‘바늘 위치’를 파악해 주검이 죽은 지 19일이 됐음을 밝혀냈다. 결국 똥파리가 해낸 것이다. 똥파리(장군)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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