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석태·군서면 월산마을 출생·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MBC 뉴욕특파원·MBC 보도국 국제부장, 문화과학부장·MBC 보도국 부국장, 해설주간·MBC 논설위원(현)
지난 5일 미국 서부 네브라스카주의 작은 도시 오마하에서 열린 한 투자회사의 주주총회에 2만7천여 명의 주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한 회사의 주총에 이처럼 많은 주주가 모여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오마하에 본사를 둔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투자회사의 회장인 워런 버핏을 직접 보고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컴퓨터의 황제인 빌 게이츠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자인 워런 버핏은 1957년 1백 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지금까지 우리 돈으로 41조원을 넘게 번 그야말로 신화적인 투자가입니다. 주주들이 버핏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우선 그가 투자의 귀재이며 엄청난 부자인 때문이겠지만, 그것 보다는 돈과 투자, 인생과 세상에 대한 현명하고 소탈한 철학과 행동, 인품에 있습니다. 그가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부자라면 누구라도 좋은 집에 좋은 차, 맛있는 음식, 멋있는 명품 옷과 가구 등 사치와 향락을 즐기면서 무언가 특별한 삶을 누리고 싶어지기 마련일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버핏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는 49년 전, 3만1천5백 달러를 주고 산 집에서 지금도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점심때면 곧잘 중고차를 몰고 나가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사먹고 시간이 남으면 집에서 미식축구 중계를 보거나 인터넷 카드게임을 즐깁니다. “좋은 집에 사는 것과 좋은 차를 타는 것은 관심 없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잘 경영해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관심일 뿐이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두 아들과 딸 등 세 자녀를 모두 사립학교를 놔두고 공립학교에 보냈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16살 때부터 시간제 아르바이트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평소 세 자녀에게는 한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해왔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지지층을 의식해 추진하고 있는 상속세와 배당세 폐지에 대해 그가 자신과 같은 소수의 부자들만 이익을 본다며 반대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는 특히 지난해 빌 게이츠와 그 부인이 세운 재단을 비롯해 자선단체들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85%인 374억 달러, 우리 돈으로 36조원을 기부하기로 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항상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느꼈으며 가족들도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총은 단순한 주총이라기보다 하나의 큰 축제이자 진지한 학습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인구 40만의 조용하던 오마하는 모여든 주주들로 활기에 넘칩니다. 10대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는 참가자들은 콘서트와 쇼핑을 즐기면서 투자비결에서부터 인생과 성공의 목적과 비결 등에 대해 묻고 세계적 투자가이자 현인으로부터 조언을 듣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모습입니까? 워런 버핏과 같은 사람으로 인해 세계화를 앞세워 무차별적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탐욕스런 미국 자본주의가 그럴듯하게 빛나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 재벌과 기업들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 술집에서 얻어맞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조폭까지 동원해 폭력을 행사한 한 재벌회장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저런 불법행위로 감옥을 들락거리거나 편법과 불법적 수단을 써서라도 악착같이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려 애쓰는 재벌과 기업인들을 생각하면 언짢고 우울합니다. 누구보다도 한국의 자본주의를 아름답게 꽃 피워야 할 이들이 오히려 그것을 천박하고 일그러지게 하는 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우리사회의 재벌이나 대기업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나 제 밥그릇만 챙기려드는 노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재벌과 대기업이 먼저 자기 쇄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순리입니다.

우리 재벌과 기업인 가운데 워런 버핏에게서 교훈을 얻는 사람이 많았으면, 그리하여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훌륭한 인간으로서 존경받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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