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웅 ·군서면 서구림리 출생·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강사·계간 문학춘추 편집인·주간·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현)·전라남도문인협회 회장(현)
나는 게으르기 짝이 없다. 아니 게으르다 못해 무감각한 편이다. 일테면 옷 갈아입기를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누나들로 하여금 ‘숭물떼’라고 핀잔도 많이 받았다. 군에 입대해서는 내의를 한겨울 내내 입다가 내무검열 때 걸려들어 왼종일 벌서는 일까지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유행따라 새옷 사입는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지만, 난 마누라가 생일 기념이니 뭐니 하면서 가끔 새 옷을 사다줘도 시큰둥하기 일쑤다. 마침내 마누라도 새 옷을 사다주는 일을 한동안 포기했다.

그러다가 환갑이 넘자, 늙을수록 단정해야 한다면서 다시 옷에 바득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여보! 이 남방샤스 어때 한여름에 딱 맞는 색깔이지! 참 잘 골랐지! 어서 입어 봐.”

“뭣 하러 샀어. 그런 돈 있으면 당신 거나 사지.”

“사다 준 사람 본정 없게 또 그런다. 우리 친구 남편들은 안 사준다고 야단이라는데, 당신은 참 이상해. 사다 줬다고 야단이니.”

“그러길래 내가 뭐랬어. 당신 것이나 하나 더 사랬지.”

“당신 이제 할아버지야. 추레해갔고 다니면 쓰겠어. 젊은 사람들이야 아무렇게 입고 다녀도 그런대로 젊음 자체가 멋이지만, 성성한 백발에 주름살이 더덕더덕 붙은 몰골을 누가 호의로 대해 주겠냐고. 그러지 말고 내말 듣고 옷에 신경 좀 써요. 제발!”
이런 마누라의 성화에 못이겨 이제는 제법 사다준 새옷 차림을 곧잘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마누라의 독촉이 뜸하는 날이면 도라미 타불이 되고 마는 것은 어쩌면 내 천성인지도 모른다. 이런 사실을 아는 내 친구들은 나 더러 “호강에 초친 짓거리를 하고 자빠졌다”고 야단법석들이다.

“당신 왜 요즈음 운동화 신고 다녀요? 내가 늙을수록 단속하고 다니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응 요즈음 등산 좀 다니느라고 그랬지. 당장 구두로 갈아 신을께.”

“지금 장마 통인데 웬 등산은 등산?”

“비 맞고 등산하는 낭만을 당신은 몰라서 그래.”

“뭐라고요?”

“아니야. 그냥 해본 소리.”

얼른 마누라 입을 막고 구두로 바꿔 신었지만, 장마 통에 새는 구두를 신는다는 게 여간한 곤욕이 아니었다.

“당신 양말이 왜 이래? 혹시 구두 샌 것 아니야.”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마누라가 옷에 신경 써주느라고, 그만 한 동안 구두를 못 사다준 사실을 그제야 감지하고 내가 운동화를 신으려 하던 내막을 안 것이다.

“아니 세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구두 하나 못 사 신어요?"

마누라는 긴 한 숨을 내쉬더니 곧바로 구두 한 켤레를 사왔다.

“신어 봐요. 꼭 맞아요?”

“그래 꼭 맞고 아주 편한 걸. 한 일년 쯤 신고 다녔던 구두처럼 말이야.”

“비싼 거애요. 최고급을 샀단 말이에요.”

“뭐 하러 그렇게 비싼 걸 사.”

“또 그 소리. 우리가 살면 이제 얼마나 더 살겠어요? 그리고 늙을수록 단장을 잘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이나 일렀어요?”

“알았어. 어쨌건 고마워요.”

“고급이니까 잘 닦아 신고 다녀요. 그 사람이 신 산지 아닌지는 얼마만큼 구두를 잘 닦아 신고 다니냐에 달렸다고 하지 않아요.”

하지만 난 한달 내내 구두 한번 안닦고 신고 다니다가, 마누라의 채근에 나는 이렇게 답변하고 말았다.
“여보! 내 구두가 최고급 이랬잖아요. 그렇게 비싼 구두를 번쩍번쩍 빛나게 닦아 신고 다녀 봐. 모임에라도 참석할 때, 신장에 벗어 놓으면 잃어버리기 십상이지. 기왕이면 고급을 돌라갈 거 아니야. 그래서 일부러 안 닦고 신고 다니는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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