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석태·군서면 월산마을 출생·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MBC 뉴욕특파원·MBC 보도국 국제부장, 문화과학부장·MBC 보도국 부국장, 해설주간·MBC 논설위원(현)
세계를 엄청난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이 더 지났습니다. 참사로 문을 닫았던 대학은 다시 수업을 시작하고 신입생 입학설명회가 열리는 등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던 캠퍼스가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데서 일종의 집단적 죄책감과 함께 한국의 이미지 훼손과 미국 내 한국인들의 안전을 우려하던 국내의 분위기도 이제는 가라앉은 듯 합니다.

시간이 더 많이 지나고 나면 대학 캠퍼스는 다시 꿈과 이상, 사랑을 구가하는 젊은 학생들로 활기에 넘칠 것이며 참극의 기억조차 희미해지겠지요. 그렇지만 피해자들의 가족에겐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아픔과 슬픔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가해자인 조승희의 가족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니 사랑하는 아들, 동생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데 더해 희대의 살인범 가족이라는 낙인까지 찍히게 된 그 가족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일 것입니다.

그들의 슬픔과 고통, 절망이 얼마나 클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조승희 부모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도 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였습니다.

고국의 친척과 전화조차 맘대로 하지 못한 채 고생고생해 돈을 모아 남들이 괜찮다는 곳에 집도 마련하고 중산층의 삶을 일궈냈습니다. 아들과 딸도 모두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그토록 꿈꿨던 아메리칸 드림이 마침내 이뤄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한 꿈과 희망은 그러나 이번 참극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조승희의 부모로서는 그동안 살아온 모든 삶이 통탄스럽기만 할 것입니다.
그토록 고생해가며 자식들의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는데 어떻게 아들이 그 정도가 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먹고 사는 일이 아무리 바빴어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더 자주 대화를 나눌 걸, 아들이 커갈 때 친구 한 두명이라도 만들어줄 걸, 아니 애당초 미국에 건너오지 않고 그냥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모든 것이 그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일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커가는 자식을 둔 부모입장에서 이번 조승희 가족의 비극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가정을 돌아보게 합니다. 조승희의 부모는 자식의 성공만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가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 한국형 부모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러한 유형의 부모가 얼마나 많습니까? 수십만에 달하는 기러기아빠는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이번 참극은 그러한 한국형 부모의 자녀양육이나 교육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깨우쳐 줍니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부모와 자녀간의 소통부재일 것입니다. 아직도 바쁜 생업이나 세대차를 이유로 자녀와의 대화를 귀찮아하거나 등한히 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고생해 뒷바라지 하는 만큼 자식은 당연히 부모의 뜻에 따라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생각하는 성공을 향해 일방적으로 자녀들을 내몰아갑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성공이 자녀 스스로의 희망이나 재능 보다는 사회의 획일화된 틀에 맞춘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자녀가 생각하는 참다운 성공이나 행복은 간과되거나 무시되기 쉽습니다. 이래가지고 우리의 자녀가 어떻게 성공하고 행복해질 수 있겠습니까?

“자녀를 성공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자녀는 불행해지기 쉽지만 자녀를 행복하게 해주면 성공한다”는 어느 목사의 말이 무척 가슴에 와 닿습니다. 너무나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자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려면 부모가 먼저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나는 정말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지, 참다운 성공과 행복은 과연 어떤 것인지” 이제 나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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