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반아 영암군 홍보대사
50여년, 이민생활 접고 최근 구림마을에 정착

“이제는 영암에 살면서 ‘통일 한국’을 꿈꾸며 한반도 중립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56년간 이민 생활을 하다가 영암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군서면 구림마을에 둥지를 튼 김반아(73) 박사.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중·고를 졸업하고 18살 때 브라질로 가족 이민을 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토론토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대학에서 철학석사, 하버드대학에서 교육학 철학박사를 취득한 1.5세대 재미교포 출신이다. 2015년 세계 여성평화운동가들과 함께 걸어서 비무장지대(DMZ)를 건너는 ‘위민 크로스 디엠지’(Women Cross DMZ) 행사를 주관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 활동을 벌이고 있는 세계 여성평화운동가인 그는 2016년 영암군 해외 홍보대사로 위촉받은 바 있다.

2015년 ‘위민 크로스 디엠지’ 행사 뒤 영암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는 김 박사는 그때 하늘이 점지해준 곳이 군서면 한 귀퉁이에 보석같이 반짝이는 구림마을이었다고 한다. 연고가 전혀 없는 영암에 집을 마련한 이유는 월출산의 산세와 그 아래 펼쳐져 있는 구림마을을 감싸고 있는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고도 했다. 또 2,200년의 역사와 지척에 왕인박사의 출생지가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남은 인생을 영암에서 보내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했다. 김 박사는 “황톳빛 돌담길과 하천을 따라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잘 살려놓은 구림마을은 멀리 미국에 있을 때도 항상 내 마음을 그곳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앞으로 월출산의 새로운 명물, 구정봉 큰바위얼굴이 세계를 향해 웅비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운동가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 박사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한 후 코로나 때문에 2주간 자가격리를 구림마을에서 한 후 서울에 있는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면서 영암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회장 강종일 박사로부터 영암출신 김삼규 선생에 대해 듣게 됐다고 했다. 김삼규 선생은 제1공화국부터 시작하여 1989년 사망할 때까지 국내외(일본)에서 독보적으로 활약한 중립화 통일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1908년 영암읍에서 태어난 그는 영암보통학교 재학 중 ‘독립만세운동’를 주동한 혐의로 투옥됐다가 출소 후 그의 형 김만규와 함께 일본으로 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 21세이던 그는 동경유학생회 위원장으로 ‘식민지교육반대’ 삐라를 만들어 광주에 보냈고, 일본 경찰에 발각돼 2주간 구금됐다. 그 후에도 계속 좌익운동에 관여하다가 동경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는 동안 ‘무산자사’ 조직에 가담하여 위원장이 됐다. 그는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하여’라는 문서를 출판하여 유학생 편으로 한국에 보낸 사실이 탄로나 1931년 8월 종로경찰서 요원들에 의해 서울로 연행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형무소에서 3년간 있다가 출소 후, 가족이 있는 동경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죽자 “Neutralization of Korea”(한국의 중립화)라는 제목의 글을 일본 신문에 투고했으며, 1953년 6월 11일 “대외적으로는 중립화, 대내적으로는 민주화가 조선문제 해결의 길”이라는 글을 조일신문 논단에 기고했다.

김 박사는 영암출신 김삼규 선생의 ‘중립화 통일론’을 얘기하며, 1948년 외조부(이종만)가 북으로 가고, 이산가족이 된 채 3대째 한반도의 영구평화를 위한 중립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한반도의 중립화야말로 통일운동의 대전제가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서 “영세중립국이 이뤄지고 평화가 보장되게 되면 지금까지 분단이 빚어 온 국내외의 생명 에너지를 고갈시켜 온 모든 갈등 구조가 사라지게 된다. 그때부터는 한국인들의 창의력과 생명력은 전적으로 국내의 사회복지와 인류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발상과 발명에 모아질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60년 전 외조부로부터 시작된 남북의 영세중립 평화통일에 대한 집안의 헌신은 201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역이민하여 제주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거쳐 이제 자신에게 와 있다는 김 박사는 “해외 여러 나라에 살면서 한국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은 내게 주는 사명감과 더불어 뿌리 깊은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나는 방역 일등국이 된 한국은 앞으로 영성 일등국, 도덕 일등국, 창의성 일등국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모범을 보일 것이라 예측한다”고 했다.               

군서면=현삼식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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