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희 봉 학산면 계천길 문화유산해설사 전통건축해설사 영암군문화관광해설가

뒤 뜰에 매일같이 날아오던 엷은 하늘색의 물까치가 며칠 전부터 뜸해진 것이 절기가 바뀌는  듯 하다. 계절이 변하듯 우리도 변하게 된다. 아기에서 아이가 되고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간다. 이렇듯 계절이 바뀌어 자연도 변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적 가치와 관리의 편의를 쫓아 산허리에는 길이 뚫리고 논과 밭에는 새로운 형태의 구조물도 늘어나 점점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묵묵히 우리 곁을 지키는 나무들은 조용히 제자리에서 둥치가 커지고 새로운 방향으로 가지를 밀어내고 있다. 우리와 세월을 함께하고 같이 부대끼고 살아가고 있는 영암의 나무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영암에는 일본에서 귀하게 여기는 일본 수양벚나무가 있다. 영암군민들 중에서도 그 나무가 어디에 왜 있는지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 수양벚나무는 일본에서는 천연기념물이다. 동강 하정웅 선생이 일본에서 가지고 와서 왕인박사유적지와 상대포, 미술관 그리고 도갑사에 심어서 자라고 있다. 왕벚꽃과는 조금 다르다. 수형이 아래로 처지는 수양 형태이고 꽃의 개수도 왕벚나무는 4~6개이지만 일본 수양벚나무는 3~4개이며 나무껍질도 다르고 꽃의 형태도 2가지이다. 기온의 변화에 민감해서 더디 자란다. 왕인박사유적지의 태극정원 주변에 17그루가 있고 상대포를 빙 둘러 18그루가 있으며 미술관에도 1그루, 도갑사에는 2그루가 식재되어 있다. 우리가 잘 가꾸고 꾸준한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를 잘한다면 시간이 지나 먼 훗날에 새로운 볼거리가 될 것 같다. 동강 하정웅 선생은 메세나 정신으로 군립미술관에 약 4천여 점의 그림을 기증하였고 도기박물관에도 많은 도자기를 기증하였으며 왕인박사유적지 조성 때 약 500그루의 나무를 기증해주신 고마운 분이다. 그분의 정성을 생각해서 나무를 잘 가꾸고 보살피는 것 또한 우리가 할 일인 듯하다.

구림마을 회사정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있다. 이전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 10여 그루가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태평양전쟁의 군수물자 동원 등에 의해 두세 그루만 남기고 모두 베어졌었고, 6.25 전쟁 중에는 회사정이 방화로 소실되는 등의 수난을 거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커다란 소나무는 산속에 많은데 회사정 주변의 평지에 이렇게 큰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소나무를 안고 소나무의 세월과 기운을 느껴보면 몸에는 기운이 전해오고 마음은 맑게 정화되는 듯하다. 소나무 군락지를 보고 있으면 그중 눈에 띄는 전나무 두 그루가 있다. 원래 전나무는 고산지대에 잘 자라는 나무인데 평지 소나무 군락 속에서도 버티면서 잘 자라고 있다. 나무들의 더불어 사는 삶 또한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군서면 월곡리에는 천연기념물 283호인 느티나무가 있다. 2014년 조사한 결과로 수령이 약 500년 정도이며 높이가 21m, 둘레는 7m로 동서남북으로 가지가 30m씩 뻗어 전체적인 나무 형태가 아름답다. 영암군과 국립산림과학원,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인 월곡리 느티나무의 우량 유전자(Gene)를 미래의 예측할 수 없는 태풍·낙뢰 등 자연재해와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악화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DNA 추출 및 복제나무를 만들어 유전자를 보존할 계획을 2014년도에 발표하였다. 옛날에 당나라로 유학길에 오른 스님이 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월곡리를 지나다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고 지팡이에서 싹이 난다면 천년을 살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될 것이라고 전해진다.

서호면 엄길마을에 들어서면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먼저 반겨준다. 그 자태를 보아하니 어른 여섯 명은 모여야 안을 수 있을 듯하다. 수형이 800년이 된 아름다운 느티나무다. 마을의 수호신인 느티나무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온다. 800년 전 한 여인이 아들의 과거 급제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나무 밑에서 매일 빌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이 과거에 낙방하자 나무가 고사했는데, 이듬해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자 다시 살아나서 아들의 과거 급제를 축하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당산나무로 받들어 모시면서 매년 정월 14일에 당산제를 거행해오고 있다.

다섯 번째로 소개할 나무는 군서면 모정마을에 있는 이팝나무이다. 벼락을 두 번이나 맞아서 껍질만 남은 몸채가 장엄한 꽃의 우주를 이루며 금세 넘어질 듯 기운 몸채를 쇠기둥 하나가 받쳐주고 있다. 보호조치를 해야 할 것 같은 위기감에 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해주고 싶지만, 벼락 때문에 몸체가 떨어져 나가 보호수가 되기 위한 기준에 못 미친다. 뼈만 남은 형태가 결격 사유가 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몇 년 전부터 이 나무가 옆으로 기운 반대편으로만 새 가지를 낸다. 넘어지지 않게 스스로 균형을 맞추어 자라고 있다.

마지막으로 학산면 독천리에서 시작해서 왕인박사유적지를 거쳐 영암읍내로 가는 10리 벚꽃길의 벚나무들이다. 개인적으로 영암의 벚꽃이 더 예쁘다고 느껴지는 건 울퉁불퉁한 나무의 둥치를 뒤덮은 검은 수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하얀색에 가까운 분홍빛 꽃잎들인 듯싶다. 도로를 드라이브하다 보면 어느새 울퉁불퉁하고 시꺼먼 나무의 몸통을 가득 뒤덮은 하얀 꽃잎들이 길을 따라 영암읍까지 행진하는 듯하다.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우리 주변의 나무들은 조상대대로 시간에 따른 풍속과 기후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심어졌고,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곳들의 나무들도 대자연의 선택에 의해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한 덕분에 현재의 우리는 나무들의 풍성한 혜택을 받고 사는 것이다. 후손들을 위해 나무를 심은 선인들의 정신과 자연의 선물을 귀하게 여기며 한 그루 한 그루 소중히 잘 가꾸고 보존하여 후대에 잘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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