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28>일본 오키노시마 유산군과 남해신사(下)

남해신사와 월출산 제사유적 시종 남해신사와 비슷한 요소를 지닌 일본의 오키노시마 유산군의 세계유산 지정 검토를 통해 남해신사도 세계유산 지정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사진은 시종면 남해신사 전경과 월출산 제사유적.

지자체 등 유기적인 협업구조 이뤄

일본 오키노시마 유적이 2009년 1월 5일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직후인 1월 24일 후쿠호카 현의 무나카타시와 후쿠쓰시는 공동으로 ‘무나카타, 오키노시마와 관련 유산군’ 세계유산추진회를 설치하여 ‘세계유산등재기념 교토심포지엄’을 시작으로 ‘규슈박물관 판넬전 및 심포지엄’ ‘도쿄 심포지엄’ 등을 펼쳤다. 이 단체를 중심으로 30개에 이르는 시민단체와 경제계, 교육기관 및 지자체 등이 유기적인 협업구조를 이루었다. 한국의 부안 죽막동 유적과 비교 연구하고, 무나카타시와 결연맺은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신이 깃든 섬, 오키노시마 섬’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2016년 9월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회의) 실사결과 8개 구성요소 중 오키노시마 및 3개의 암초로만 제한하는 조건부 권고를 하였다. 나머지 4개 요소에 대해서는 “지역적이나 글로벌 가치보다는 국가적인 중요성이 강하다”는 논지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표명했다. 구성요소를 오키노시마 및 3개의 암초로 한정한 ‘성스러운 섬 오키노시마’(Sacred Island of Okinoshima)로 변경할 것을 조언했다.

이는 이코모스가 일본이 앞서 제출한 등재 기준 중 (ii)4세기부터 9세기 동아시아의 가치관과 교류를 나타냈으며 (iii)섬을 숭배하는 문화적 전통이 계승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였으나 (vi)무나카타 여신 신앙이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살아있는 전통’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즉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기술된 무나카타의 세 여신 신앙을 숭배의 실질적인 증거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7년 세계유산위원회 심의에서 제외 권고를 받은 4개 요소까지 포함되어 등재 결정되었다.

이를 통해 먼저, 추천국과 자문기구, 그리고 위원국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코모스는 유적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전반적으로 인정한 후, 등재를 전제로 조건부 등재를 권고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이코모스의 조언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본래 8개 구성요소를 그대로 고수했다. 일본은 등재가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 구성요소의 일괄 등재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적인 외교활동을 펼쳤다.
 
최근 재창조된 의례도 전통으로 해석돼

다음으로 이코모스 측은 문헌을 토대로 한 세 여신 신앙이 무나카타 지역주민의 신앙적 믿음의 원천이 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등재 신청서와 추가 정보자료 등에 기술된 세 여신 신앙의 장소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이 문화유산은 ‘사회적으로 형성된(socially constructed) 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즉, 사회·정치학적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단절된 전통을 오늘날 커뮤니티 및 지역 주민들의 의지로 부흥시키고 계승하는 노력 역시 광역적인 관점에서 전통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조상대대로 전승된 관습뿐만 아니라, 근대이후 혹은 최근 재창조된 의례 역시 문맥에 따라서는 전통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 점은 세계유산 등재를 꿈꾸고 있는 남해신사에 해당된다고 여겨진다.
 
‘국가적’ 요소보다 ‘글로벌’이 중요하다

세 번째 쟁점으로 이코모스 등의 자문기구가 유산의 가치를 ‘글로벌’(global) 혹은 ‘국가적’(national)의 양상으로 구도화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코모스의 권고 중 “일련의 무나카타타이샤와 무나카타 호족의 기여를 보여주는 고분군의 가치는 국가적인 것이므로, 지역이나 세계적인 가치로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즉, 심사대상 유산이 신청국의 국내적 가치에 머무르는 수준인지, 혹은 세계유산에 걸맞는 글로벌 가치를 충족하는지를 분명히 구분하려는 이코모스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편, 당시 주변 국가와의 교류를 입증하는 제사유적을 통해서 오키노시마의 가치를 다각적으로 규명하였다. 오키노시마 제사의 이행은 4세기 후반 이후의 가야 및 백제와의 교류와 더불어 고구려와의 대항이나 신라와의 긴장 관계와도 궤를 같이한다고 보았다. 5세기 이후에는 “왜구가 점차 금관가야로부터 백제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외교 전략의 전환기”에 접어드는 역사적 배경에 주목하며, 그 흐름을 보다 광역적인 관점에서 오키노시마를 둘러싼 국제성으로 분석하였다. 즉, 오키노시마 제사는 일본뿐 아니라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국제관계를 나타내는 진정한 정보의 발신이라는 것이다. 5세기 후반부터 7세기 말까지 오키노시마 제사에 변화가 발생한 주요 요인으로, 고구려의 압박과 백제 및 신라의 남하에 따른 가야가 그 지배하에 편입된 점을 제기하였다. 출토 유물에 새로운 신라풍의 금동 마구를 비롯하여 고대 이란의 커트 글라스 등 중앙아시아의 전래품도 새롭게 발견된 사실로부터, 이 시기의 안전항해 기원 역시 다분히 국제성을 띠고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영산 지중해에 위치하여 교류·융합 요소가 강한 남해신사도 내세울 강점이라 하겠다.

이처럼 일본의 오키노시마 유산군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을 살펴보았는데, 이를 통해 남해신사의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 및 방안을 검토하여 보겠다. 먼저 등재 목록화 사업과 함께 해당 유산의 세계유산추진협의기구를 조속히 설치할 필요가 있다.
 
신성성에 기반한 명칭을 내세워야

다음으로 유산의 명칭과 구성요소의 유기적 연계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다소 평범한 명칭이었던 ‘무나카타·오키노시마’에 ‘신성한 섬’(Sacred Island)이라는 살아있는 의미를 추가한 점이 주효했다. 일부 위원들이 ‘애니미즘’ 및 ‘영적’ 등의 용어를 강조한 점도 주목된다. 유네스코가 1994년 글로벌 전략이후 ‘신성성’에 주안점을 둔 토착민과 신앙, 주민과 토지와의 융합적인 상호작용을 반영한 결과이다. 일본에서는 2013년 후지산을 ‘성스러운 장소’(Sacred Place)로 신격화한 데 이어 오키노시마 역시 ‘신이 깃든 섬’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신성성에 기반하는 유산의 무형적 가치를 명칭에 전략적으로 활용한 사실을 살펴야 한다. 이 점은 제사유적의 보고인 월출산과 남해신사를 연결지으면 충분히 등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셋째, 문화유산에 내재된 살아있는 전통의 가치를 명확히 입증할 실질적인 증거를 확보함과 동시에 제시 자료의 일관성을 도모해야 한다. 오키노시마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사건, 전통, 신앙 입증 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증거를 요구하므로 무엇보다 이를 반영한 각종 문헌기록, 예술작품, 사진 등 물증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나카타 세 여신 신앙의 출현 장소에 대한 문헌상의 내용과 현재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점을 들어 이코모스가 등재 기준을 인정하지 않았듯이 과거와 현재의 서술을 면밀히 대조·검토하는 고고학적 연구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남해신사의 역사적 가치를 실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무나카타 시가 자매결연 도시인 김해시와 박물관 전시교류를 통해 일찍이 유산의 가치를 홍보했듯이 남해신사도 공통요소를 공유하는 해외유산 사례를 발굴하여 창의적으로 교류를 증진하는 것도 유효한 방법이다.

결론적으로 시종 남해신사와 비슷한 요소를 지닌 일본의 오키노시마 유산군의 세계유산 지정 검토를 통해 남해신사도 세계유산 지정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등재 기준에 맞게 설계하는가는 우리의 몫이다.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