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27>일본 오키노시마 유산군과 남해신사(上)

시종 남해신사 세계유산 지정 가치 높아

필자는 앞서 부안 죽막동 마한 제사유적의 세계유산 등재 노력을 살펴보며 우리 지역 남해신사 문제를 이와 연결지어 보았다.(본지 ‘새로 쓰는 영산강유역 고대사’ 111~113회차,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남해신당)

그것은 해신을 모시는 사당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우리 영암 시종 남해포에 있는 ‘남해신사’의 세계문화 지정 가능성을 모색해보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때 함께 언급된 사례가 일본의 오키노시마 해양 유산의 세계문화 지정이었다. 일본의 사례 검토는 마한시대부터 그 역사성을 지닌 남해신사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생각하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리라 생각한다.

우리 영암인들이 너무 잘 아는 바와 같이 ‘마한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찬란한 영산지중해 문화를 일구었던 마한사의 복원을 통해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관광문화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최근 만난 전라남도 문화재 관계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 역시 마한사 복원의 궁극적인 목적의 하나는, 특히 마한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마한사의 중심부를 이룬 영암 시종·나주 반남 지역의 마한사를 발굴·조사·복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세계유산이 지니는 상징성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여겨지는 남해신사에 대한 발굴과 연구, 복원은 한시바삐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일본의 사례, 정확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일본 오키노시마(沖ノ島) 해양유산군(群)은 2017년 7월 제41회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결정되었다. 그때 일본이 유네스코위원회에 제출한 명칭은 ‘성스러운 섬 오키노시마와 무나타카다 지역의 관련 유산군’으로 일본명은 ‘神宿ゐ島 宗像·沖ノ島と關連遺産群’이다. 영문으로는 ‘Sacred Island of Okinoshima and Associated Sites in the Munasata Region’이다. 필자가 일본 원명 및 영어 표기까지 함께 적은 것은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섬 오키노시마와 무나카타 지역의 관련 유산군’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을 보면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유산 심사 및 등재 과정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집약한 유효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오늘 먼저 유적의 개요를 살펴보고, 이어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유산군은 4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진 ‘성스러운 섬’과 연관된 8개의 구성요소로 된 문화유산이다. 오키노시마 섬에서는 1956년부터 1971년 사이 3차례의 학술조사와 수차례에 걸친 발굴작업 결과 고대 한반도나 중국 등으로부터 전래된 거울·금반지 등 8만 점에 이르는 국보급 유물의 봉헌물이 출토되어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우리에게는 통일신라 촌락문서가 발견된 정창원에 빗대어 ‘바다의 정창원’(正倉院)이라 불렸다.
 
다양한 문화요소의 특성을 구조화하다

각 요소를 살펴보면, 일본 열도와 한반도 사이의 해협에 있는 규슈 북부의 무나카타 지역에서 60km 북서쪽에 위치한 ①오키노시마(沖ノ島) 섬을 비롯하여 ②코야지마(小屋島) 암초 ③미카도바시라(御門柱) 암초 ④텐구이와(天狗岩) 암초 등 세 개의 암초로 구성된 무나카타타이샤 오키쓰미야 신사(宗像大社沖津宮) ⑤무나카타타이샤 오키쓰미야 신사 요배소(宗像大社沖津宮遙拝所) ⑥무나카타타이샤 나카쓰미야 신사(宗像大社中津宮) ⑦무나카타타이샤 헤쓰미야신사(宗像大社辺津宮) ⑧신바루·누야마 고분군(新新原·奴山古墳群)이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①오키노시마 섬은 4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 자연숭배에 기초한 제례의 변화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연대기적 기록이다. 그리고 무나카타타이샤 신사는 각 3개의 신앙장소, 즉 오키노시마 섬의 오키쓰미야 신사, 오시마 섬의 ⑥나카쓰미야 신사 그리고 규슈 본토의 ⑦헤쓰미야 신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 3개의 신사는 고대 제사유적을 기원으로 하며, 지금도 신앙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오키노시마 인근 해역에서는 항해술에 능한 고대 호족인 무나카타 가문이 해양지역을 무대로 대외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4세기 후반에 일본과 중국, 한반도의 고대 왕조와 교류가 활발해지자, 오키노시마에서는 항해의 안전과 교류의 성취를 기원하는 제사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대규모 제사는 고대국가와 무나카타 호족과의 밀접한 관계를 맺는 국가 제의에서 중국과 한반도의 고대 왕조와 교류를 구현하고 있다. 그리고 무나카타 가문이 오키노시마 섬에 깃든 무나카타의 세 여신 신앙은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지역 전승을 국가신앙과 연결지었다

‘일본서기’와 ‘고사기’ 등 일본 역사서에 등장하는 무나카타 세 여신의 탄생신화는 다음과 같다. 일본 건국신화의 주요 신인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가 맹세할 때,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오의 검을 깨물고 뿜어낸 숨의 안개에서 ‘타고리히메’ ‘타기츠히메’ ‘이치키시마히메’라는 세 여신이 탄생했다. 세 여신은 아마테라스의 칙명에 의해 무나카타에서 한반도로 향하는 고대 항로에 해당하는 ‘바다의 북쪽 길’에 나타난 이후, 국가의 수호신으로 숭배되고 있다.

또한 ‘일본서기’에는 무나카타 세 여신이 ‘미치누시노무치’ 즉 모든 길을 인도하는 가장 고귀한 신으로 추대받은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문헌자료에 등장하는 여신들의 출현장소와 오늘날의 현지 기록과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나 무나카타의 세 여신이 일본 건국신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⑤무나카타타이샤 오키쓰미야 신사 요배소는 18세기까지 오키노시마 섬을 멀리서 참배하는 장소로 기능하였다. 마지막으로 ⑧신바루·누야마 고분군은 오키노시마 섬에 대한 신앙의 전통을 키운 무나카타 가문의 존재를 증명하는 분묘군으로, 전방후원분 5기를 포함한 크고 작은 41기의 고분이 있다. 오키노시마에는 성스러운 섬을 숭배한 일본인들의 세 여신 신앙 이외에도 다양한 금기사항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선 섬 전체가 여신의 몸으로 성역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성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또한 상륙을 허락받은 남성은 부둣가에서 바닷물에 몸을 담가 부정을 없앤 후에야 섬으로 출입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섬에서 보고 들은 것은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며, 나무·풀·흙 등을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사항을 들 수 있다.
 
유산의 특성을 반영한 ‘탁월한 가치’ 기준

일본 측이 ‘성스러운 섬 오키노시마와 무나카타 지역의 관련 유산군’의 탁월한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입증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추천 기준을 만들었다.

①의 유적은 오키노시마에서 시작된 고대제사의 변천으로 4세기부터 9세기 동아시아의 가치관의 교류를 나타낸다.

②의 유적은 섬을 숭배하는 문화적 전통이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온 물질적 증거이다. 특히 오키노시마는 1,500년 이상 신성한 섬으로 자리매김해왔다.

③오키노시마 지역에서 무나카타 여신 신앙의 발자취를 전승하는 유산군은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살아있는 전통’(living heritage)과 명백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추천 기준을 설정한 추진위원회는 본격적인 신청 준비에 들어갔다.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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