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26>변산반도의 할미해신(下)

주산군도 설화와 연관된 개양할미 전설

지난 호에 변산반도 격포의 수성당 당굴에 거처하는 개양할미 관련 설화를 잠깐 언급했다. 수성당에는 여덟 자매를 낳아 일곱 딸을 팔도에 한 명씩 나누어 주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바다를 다스렸다는 개양할미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몇 차례 언급하였지만, 이곳 격포 수성당 공터에서 마한시기 해양제사 유적이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출토된 중국 남조 계통의 토기를 통해 중국 주산군도와 우리나라 변산반도 사이에 ‘사단항로’라는 바닷길이 열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성당의 개양할미 설화도 중국 주산군도에 형성된 설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주산군도 승사현 사람들은 봄의 출어기에 개양제(開洋祭)를 지내고, 가을 한어기에는 사양제(謝洋祭)를 지내는 관행이 있다. 개양제는 바다를 열어주는 해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하는데, 주산군도 승사열도의 모든 유인도에서는 각 섬의 보호신과 함께 관음보살을 반드시 섬기는 관행이 있다. 변산반도 개양제의 해신도 관음보살의 화신인 할미신이었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고 있다.

죽막동 수성당의 개양할머니는 주산군도에서 개양제의 대상인 할미신이 바닷길을 따라 직접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개양할머니의 키가 바다를 걸어 다니고 깊다는 곰소의 ‘계란여’를 들어가도 겨우 치맛자락이 바닷물에 젖을 정도로 컸다고 한다. 이처럼 ‘거인의 노파’는 보타산의 할미신 계통이라 할 수 있다. 보타산의 노파는 관음의 화신인데, 승사열도 사람들이 사찰에 출산 양육신인 송자 관음을 모시고 있다. 이러한 관음 화신과 송자 관음신앙이 그대로 수성당의 개양할미에 투영되어 있다 하겠다. 수성당의 개양할미가 관음의 화신이며, 8명의 딸을 낳아서 막내딸을 품에 안은 채 살아가고 7명의 딸을 각 섬에 시집보냈다는 설화에서 송자 관음과 벽하원군 신앙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벽하원군은 도교에서 출산 보호신으로 신앙되는 여신이다.

 불교와 도교신앙의 융합

수성당의 개양할머니 설화에서 관음의 화신인 거인·출산 양육신인 불교의 관음신앙 계통인 송자 관음, 그리고 도교의 신선 사상인 벽하원군과 마고할미 신앙이 융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죽막동 설화에서 보이는 ‘수성당’이 관음신앙 계통의 명칭이라면, 구랑사(九娘祠)는 도교신앙 계통 명칭이다. 구랑사는 9명의 여신을 배향한 사당을 말하는데, 9명의 여신은 벽하원군과 보조신 2명, 6명의 수행원을 가리킨다. 이처럼 불교와 도교의 융화구도는 천태산의 마고할미와 보타낙가산에서 관음보살이 융합하여 형성된 해신이 사단항로를 따라 변산반도를 건너왔음을 알려준다.

마고할미가 해신으로 출현한 곳은 절강성 주산군도이다. 이곳에서 천태산의 마고와 보타산의 할미신이 결합하고, 여기에 다시 거인의 남해관음이 결합한 마고할미가 사단항로를 따라 한반도 서남해안으로 건너온 것이다. 따라서 격포 죽막동 수성당의 개양할미를 비롯하여 제주도 선문대할망 등은 모두 천태산 마고할미 계통이라 할 수 있다.

마고와 마조는 모두 중국의 여신을 말한다. 마고는 신선으로 산신을 말하고, 마조는 신녀로 해신을 말한다. 마고는 원래 중국의 지식인들이 흠모하고 동경하는 신선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사대부와 유학자들이 마고를 흠모하고 동경하는 시문 등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를 가지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처음 마고신앙이 유행하였다고 여기기도 하나, 조선시대 보다 이른 시기에 마고를 중국처럼 흠모의 대상으로 삼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중국에서 마고가 18세기 무렵 상공업의 발달과 시장경제의 번창, 민중의식의 성장에 따른 서민문화의 확산과정에서 마고 신선이 대중화되면서 서민들 곁으로 다가왔다. 마고가 신선 세계에서 서민층으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젊고 아리따운 마고 신선에서 나이 든 할머니로 변모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마고할미가 키가 크고 힘이 센 신체를 가졌는데, 이 ‘거인 노파’는 중국 보타산의 할머니신과 천태산의 마고가 결합한 마고할미가 다시 남해관음과 결합하여 태동한 것이라 하겠다. 이 거인 마고할미가 주산군도에서 사단항로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와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해양세력 확장과 연관된 마조신앙

한편 마조는 10세기 중엽 중국 복건성 미주도의 임씨 집안에서 출생한 실존 여성인 임묵과 관련된 얘기가 해신으로 발전한 것이다. 마조는 진씨부인이 꿈에 관음보살이 준 환약을 먹고 아기를 잉태하여 낳았다는 출생담을 갖고 있다. 어렸을 때 마조의 이름은 임묵이었다. 그녀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관음경’을 외었고, 11살에 신을 모신 신단 앞에서 춤을 추며 신을 즐겁게 해주었다 한다.

마조는 관음보살이 점지시켜 낳은 아이라는 점에서 ‘관음마’(觀音媽)라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신통력을 가진 신녀였던 마조는 관음보살의 제도(濟度)를 받아서 항해 보호신으로서 영험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임씨 집안에서 마조신앙이 형성된 배경은 복건성의 해상세력인 그 집안에서 해상활동을 주도할 목적으로 해신을 집안의 신으로 끌어들이려 한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시 중국 강남 해안 지역에서는 항해 보호신으로 남해관음을 숭배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에 당말 송초에 복건성 일대에서 해상무역을 주도한 임씨 집안에서 남해관음의 선몽으로 낳은 마조를 신격화하여 복건성 일대 제해권 장악을 시도하였던 것이라 하겠다.

마조는 바다에 나갈 사람에게 큰 파도로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나가지 말라고 예언을 하거나 항해 도중 거친 풍랑을 만나 선박이 위기에 처할 때 술법을 써서 구원해주는 신통력을 보여줌으로써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신통력으로 인해 ‘신녀’의 존칭이 붙여지고 곳곳에 마조묘가 세워졌다. 몽고에 밀린 송이 강남으로 이동하여 세운 남송 왕조가 해안도시인 항주에 도읍을 정하면서 마조신앙은 해안도시 곳곳으로 확산되었고, 심지어 화교를 통해 동남아시아로 확대되었다. 이제 마조신앙은 중국의 대표적인 해양신앙이 되었고, 마조는 항해 보호신이 되었다.
 
할미해신 설화는 중국과의 문화융합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신이자 산신인 마고 할미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죽막동 할미설화는 중국의 마조신앙과 마찬가지로 관음보살에서 파생된 해신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마조신앙은 복건성에서 태어난 신녀가 관음신앙의 영향을 받으며 해신으로 발달하였고, 우리나라의 마고 할미신앙은 중국 절강성 보타산에서 관음보살의 화신인 할미신과 천태산의 마고가 결합하고, 다시 남해관음이 결합하면서 거인의 해신으로 태동하였던 것이다.

이 거인의 마고할미가 사단항로를 따라 한반도로 건너와 해신과 마고할미 설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죽막동 할미해신 설화는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활발한 문화융합 현상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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