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25>변산반도의 할미해신(上)

부안 죽막동 유적 전경 부안 죽막동 유적은 해안절벽 위에 고대의 원시적인 제사를 지낸 흔적이 그대로 보존돼 있고, 고대 마한 시기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시기의 해양제사 문화의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지금까지도 어부들의 안전과 고기잡이를 도와준다는 개양할미(변산반도 앞바다를 수호하는 해신)의 전설이 내려오고,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가 매년 열리고 있어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마한축제는 대한민국 대표축제가 돼야

나주와 영암이 별도로 진행해왔던 마한축제를 2020년부터 공동으로 개최하자는데 양 지자체 장이 합의했으나 실무적으로는 전혀 진척이 없어 금년에도 예년처럼 각기 따로 진행될 것 같다는 본보의 보도가 있었다. 누차 이야기했지만 양 지역은 마한의 중심지로서의 역사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어 당연히 하나의 축제를 지향하는 것이 옳다 하겠다. 더욱 통합축제로서 전라남도축제로 하는 것이 마한축제가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발돋움하는데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나주는 ‘나주학’이라 하여 시 차원에서 조례를 제정하는 등 나주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영암지역은 왕인문화축제, 마한축제 등 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바탕으로 한 축제에다 트로트기념관, 바둑기념관 등 지역출신 인물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기념시설을 만들어 영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암지역을 찾는 외지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음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축제기간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암인의 자긍심 높이는 역사교육 서둘러야

최근 전라남도교육청에서는 ‘남도 민주평화 길’(2020.1)이라는 학생용 체험학습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전남 22개 시군의 근현대를 빛낸 인물과 역사적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본서의 편집 책임을 맡은 필자는 영암지역이 고대 마한의 역사적 자존감을 현대에도 그대로 가졌음을 드러내려고 하였다.

김한남 영암문화원장도 이 자료집의 발간작업에 함께 참여하여 책의 가치를 빛내는데 일조를 하였다.

필자가 ‘영암의병사’를 정리하며 새롭게 부각시킨 전남의병의 성지 국사봉과 양방매 여성의병장·김선중의병장, 영암3·1운동을 이끈 조극환, 박규상,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최규창, 항일농민운동을 이끈 신원범, 도쿄 2·8독립선언을 주도한 김준연, 5·18민주화운동 당시 ‘영암수괴’라 불렸던 김희규, 2019년 11월 ‘이달의 5·18민주유공자’로 선정된 김영두 등 근현대를 빛낸 영암인물은 헤아릴 수 없다. 여기에 설명이 누락되었다 하여 그분들의 업적이 빛나지 않음은 더더욱 아니다. 영암지역은 한국전쟁 때 겪은 이념의 아픔을 승화하려는 지역민들의 위대함이 드러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한국 근현대사 영암의 역사를 한정된 공간에 오롯이 담아 영암이 역사의 고장임을 밝히려 하였다. 이 책을 통해 영암학생들이 향토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려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고할미 신앙은 대표적인 해양신앙이다

지난 호에 변산반도의 관음신앙을 살펴보았다. 필자가 연이어 해양신앙을 검토하려는 의도는 남해신사와 월출산 사전(祀典) 등을 통해 고대 마한시기부터 해양신앙이 지역의 고유한 문화 양태였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나아가 그러한 해양신앙이 지니는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고군산열도에 속한 장자도의 대장봉에 있는 할매바위를 통해 해양신앙의 하나인 할미해신 신앙이 그곳에 형성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오늘은 그러한 신앙의 원형이 남아 있는 변산반도의 할미신앙을 살펴보려 한다.

한국의 민간신앙에는 인격화된 여러 유형의 할미신이 등장하고 있다. 크게 구분하면 노구(老嫗 늙은 할미), 노고(老姑 노파), 마고(麻姑) 할미로 분류할 수 있다. 노구는 삼국유사 등 고대 역사서에 등장하고, 노고와 마고할미가 민간의 구전자료에 흔히 등장한다. 노구는 왕의 탄생과 양육 및 왕권을 관리하는 여신의 존재로 나타난다. 이로 미루어 아주 일찍부터 우리 민중의 삶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노고와 마고할미는 산신 또는 해신으로 등장한다. 특히 마고할미는 주로 해안지역에서 해신으로, 내륙 산간지역에서 산신으로 등장한다. 원래 마고와 마조는 중국의 여신을 말하는데, 마고는 산신, 마조는 해신을 말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지역별로 서로 다른 할미신이 분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모두가 마고할미 계통에 속한다. 마고할미 해신은 주로 구전설화에 등장하고 신화적 능력과 신이한 이적(異蹟)을 보여준다. 구전설화에서 마고할미 해신은 거구, 거의(巨衣), 큰힘(巨力)의 소유자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마고할미 계통 설화는 제주도의 선문대할망과 변산반도의 개양(開洋)할미 설화가 있다.

이들 설화에 나오는 할미는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 보타산의 단고할미와 비슷하다. 보타산의 단고도두(短姑道頭) 설화에서 단고할미는 관음도량의 참배자와 항해자를 돕기 위하여 해안에 출현하는 할미해신이다. 보타산의 할미해신이 지난 호에 살핀 사단항로를 따라 제주도로 건너와 선문대할망으로 자리하고, 변산반도로 건너와 수성당의 개양할미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의 선문대할망과 개양할미는 마고신화 성격을 갖고 있으며 거구의 신체를 갖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할미해신 원형은 동질이다

이처럼 중국과 한국의 할미해신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두 지역의 연결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과 중국의 할미해신을 동아시아 해양 실크로드라는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전주대 송화섭 교수의 주장은 타당하다. 송 교수는 중국 주산군도 보타산의 관음보살은 남해관음이며, 남해관음은 남인도에서 남중국해를 경유하여 중국 강남해안으로 들어왔다고 보고 있다. 문화의 전파경로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영산지중해 마한 실크로드’라는 표현을 수년 전부터 즐겨 쓰고 있는 필자는 한반도 남부 특히 영산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마한남부 연맹체의 문화의 특질이 북방계보다는 남방계의 성격이 강함을 확인하였다.

부안의 죽막동 수성당과 관련이 있는 개양할미해신 전설이 전라북도가 펴낸 ‘전설지’에 실려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해양신앙의 또 다른 모습을 찾기를 기대한다.
 
“격포항에는 채석강과 적벽강의 해안을 따라 북으로 3km쯤 가면 죽막동이 나오는데, 이 죽막동 뒤 대마골의 여울굴 옆 절벽 위에 칠산바다를 관장하며 지켜주는 ‘개양할미’를 모셔놓은 수성당이란 당집이 있다. 아주 먼 옛날 이 수성당 옆의 여울굴 속에서 ‘개양할미’가 나와 딸 8형제를 낳아서 일곱 딸은 각 도에 한 명씩 나누어 주고 막내딸만 데리고 이 수성당에서 살았다 하여 구낭사(九娘祠)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후 ‘개양할미’는 바다의 성인 같은 존재로 어민들이 받들어 모시게 되어 수성당이라 하였다 하며, 또 ‘개양할미’를 ‘수성할미’로 부르기도 한다. 이 개양할미는 키가 얼마나 크던지 굽나막신을 신고 서해바다를 걸어 다니며 깊은 곳을 메우고 위험한 곳에 표시를 하여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하여 주고 고기도 많이 잡히게 하였는데 곰소 앞바다의 ‘계란여’라는 곳에 이르러 이곳이 얼마나 깊던지 치맛자락이 조금 물에 젖었다고 한다. 이곳은 지금도 깊어서 이 지방의 속담에 깊은 곳을 비유하여 말할 때 ‘곰소 둠벙속 같이 깊다’라는 말이 있다. 이곳 해안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수성당의 할미를 잘 받들어야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고 바다에서 풍랑의 위험을 면할 수 있다고 믿어 음력 정월 보름날이면, 당제를 지내어 ‘개양할미’를 위로하여 주고 있다.”

위 설화와 관련된 자세한 얘기는 다음 호에서 다루고자 한다.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