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23>변산반도 관음신앙(上)

월명암 관음전과 장자도 할매바위 전북 부안군 변산면 쌍선봉에 자리하고 있는 월명암은 대둔산의 태고사, 백양사의 운문암과 함께 호남의 3대 수도처로 알려져 있다. 고군산군도 장자도의 ‘할매바위’는 일찍부터 이 지역에 해양신앙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오른쪽 사진)

얼마 전, ‘코로나19’ 방역으로 비상근무하는 아들을 만나러 전북 부안 변산에 다녀왔다. 네 식구가 모처럼 변산반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 있는 죽막동의 수성당을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였다. 변산반도는 남해신사와 같은 해신당으로서의 오랜 역사적 위치를 지닌 죽막동의 수성당과 월출산의 관음신앙을 연상시키는 내변산 국립공원에 우뚝 솟은 관음봉이 있는 등 영암과 부안은 공통된 특징이 많다.

음력 정월 보름 죽막동에서는 해신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행해져 왔다. 남해신사에서 행해졌던 해신제의 원형을 찾아보려는 영암지역의 마한축제준비위원들이 2월 초에 예정된 죽막동의 해신제를 직접 참관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죽막동 수성당과 남해신사의 공통된 성격에 관심을 가졌던 필자는 이번 축제를 직접 살펴보려 하였다. 필자는 축제 훨씬 전부터 해신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성과를 살펴보는 등 나름대로 사전에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로운 전염병의 창궐로 행사가 부득이 취소되어 안타까움이 적지 않았다. 그러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번에 일부러 부안을 찾아 수성당에서 행해졌을 해신제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수성당을 살핀 필자는 군산 선유도를 찾았다. 선유도는 문자 그대로 신선이 내려와 지낸다는 섬으로 고군산군도를 구성하는 10개의 유인도 가운데 하나다. 선유도를 비롯하여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 수려한 해변과 어촌 풍경을 간직한 섬이 이어져 사진으로만 보아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최근 그 섬들을 연결하는 연륙교가 생겨 접근성이 좋은 까닭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이날도 휴일인 탓이기도 하였지만, 새만금 홍보관 입구부터 선유도, 대장도를 잇는 십 수 ㎞의 도로가 승용차로 가득했다. 이곳에는 ‘코로나19’가 남의 얘기로 보였다. 외국에 나가지 못하는 관광객들이 모두 선유도로 모여든 것 같았다.
 
할매신앙이 형성된 고군산군도

특별히 준비하지 않은 채 선유도를 둘러보던 필자는 변산반도와 가까운 이 지역에도 수성당과 같은 해양신앙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천우신조로 해양신앙의 또 다른 흔적을 발견하는 행운이 있었다. 연륙교가 이어진 고군산군도의 맨 마지막에 있는 작은 섬 장장도에 해발 142m의 ‘대장봉’이라 불리는 봉우리가 있었다. 그곳 정상을 거쳐 내려오는데 ‘장자도의 할매바위’라는 안내판과 함께 전설을 가득 품은 할매바위가 있었다. 필자는 해양신앙, 또는 관음신앙과 연결된 할매바위가 그 섬에 있는 것을 보고 이 지역에 일찍부터 해양신앙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군산군도는 중국과 가까이 있어 해양교류의 중개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안내판 바로 옆에 곧 쓰러져가는 ‘어화대’가 있었다. ‘접근금지’라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이곳에서 출어를 앞둔 어부들이 풍어를 기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할매바위 근처에 있는 것으로 보아 무사 어로를 기원하는 신당의 기능도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변산반도의 할매신앙에 대해서는 다음 주제로 남겨놓고, 오늘은 변산반도의 관음신앙을 살펴보려 한다. 그것은 월출산의 관음신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미 살핀 바 있듯이 1992년 변산반도 격포 죽막동의 제사유적이 발굴되어 이곳이 고대부터 해양신앙이 발달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반도는 내륙지형이 바다에 돌출되어 항해, 기항, 어로와 관련된 해양문화가 깊게 스며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 제사유적이 확인되고 있는 것은, 이미 마한 시기부터 한반도와 일본, 중국이 황해를 무대로 문물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격포는 지리적인 위치로 볼 때 영산 지중해상에 있는 상대포나 남해포와 같은 거점항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중간 기항지로서의 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관음신앙과 해양신앙의 동질성

여하튼, 많은 선박이 쉬어가는 기항지인 이곳에 해양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민간신앙이 있었으리라고 하는 것을 죽막동 제사유적이 확인해주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민간신앙과 함께 불교가 유입되면서 역시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관음신앙이 바다에 인접하여 있던 영암 월출산에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이곳 변산반도에도 유입되어 있었다. 그러한 사례를 보여주는 사찰 창건과 관음 연기설화가 풍부하게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 특히 바다를 통해 유입된 불상, 불경 등 불교문화가 전래해오는 창사 연기설화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백의관음보살도가 깊게 스며 있다. 이러한 불교신앙은 처음에는 기존의 민간전승과 습합되면서 내려왔을 법하다. 물론 4세기 죽막동 제사유적에서 불교 관련 유물이 전혀 없어 해양제사와 관음신앙이 연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해양제사나 관음신앙 모두 해양수호신에 대한 제사와 신앙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을 뿐 아니라 그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음신앙 설화 등이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음연기설화가 있었던 변산반도

현재 확인되고 있는 변산반도의 관음 연기설화로는 ‘대참사(大懺寺)’ 연기설화가 있다. 대참사는 독자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신라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스님이 진흥왕의 시주를 받아 창건했다는 얘기가 전하고 있다. 조선 중기까지 중심사찰로 융성함을 자랑하였으나 조선 후기부터 쇠락하여 선운사의 산내 암자로 편입되는 처지가 되었다. 이 대참사에 관음 연기설화가 있다. 이 연기설화를 비롯하여 내소사 중창연기설화, 내변산 높은 중턱에 있는 월명암 창건연기설화, 실상사 창건연기설화 등 셀 수 없이 많다. 실상사는 우리가 잘 아는 남원 실상사가 내변산에 있는 실상사를 말한다. 이 가운데 월명암 창건연기설화를 인용해 본다. 다른 연기설화들도 내용은 다르지만, 설화의 동기는 거의 비슷하다.

“관선불 마을에 목선이 한 척이 떠내려 왔다. 목선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잘 생긴 스님 한 분이 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목선을 발견하고 모두 선창가에 서서 목선에 탄 스님을 주시하고 있었다. 얼마 있다가 배에 앉아 있었던 스님이 하선하려 하자 물 위에 바윗돌이 솟아났다. 스님이 바랑을 걸머쥐고 이 바위에 좌정한 뒤 염불을 시작하였다. 염불이 시작되자 어디서 왔는지 불현듯 나타난 스님 한 분이 목탁을 치고 있었다. 물론 스님이 목탁을 치고 있던 자리에는 예전에 없었던 널찍한 바위가 놓여 있었다. 얼마 후 하늘로부터 오색찬란한 빛이 발산되더니만 앳된 여승이 한 분 나타나 바라를 목탁에 맞추어 두들기고 있었다. 역시 바라를 치고 있는 여승의 자리에도 바위가 물 위로 솟아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스님의 행사가 마쳐지자 목선 위에 동자 부처님이 앉아 있었다. 동자 부처는 스님의 안내를 받아 월명으로 갔다.”

월명암은 전북 부안군 변산면 쌍선봉에 자리하고 있다. 말이 암자이지 웬만한 사찰이라고 불러도 좋을 규모의 사찰이다. 이 월명암은 대둔산의 태고사, 백양사의 운문암과 함께 호남의 3대 수도처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월명암은 신문왕 때 월명암을 창건한 부설거사와 부부의 연을 맺은 묘화, 그 사이에서 태어난 월명 등 일가족이 모두 성불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더욱 유명하기도 하다. 지난해 봄 변산보건소에 근무하는 아들을 보러 갔다 내변산에 있는 관음신앙 흔적들을 찾아 나섰던 기억이 있다. 월명암에서 바라본 관음봉과 내변산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 관음이 경치에 취하여 머물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월명암과 관련된 관음신앙은 다음에 자세히 살펴보겠다.<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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