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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한
신 중 재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금방 눈이라도 오려는지 하늘에 먹구름이 감돌았다. 진등재 밭에 보리를 갈기 위해 지게에 두엄을 올리고 있는데 아버지는 한사코 말린다. 아침 젖을 먹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중재 곁을 떨어지기 싫지만 식구들 식량 한 줌이라도 얻기 위해, “용수야! 진등재 밭 부근에서 저렇게 탁꿍탁꿍 총소리가 요란한디 먼노므 보리는 간다고 그라냐, 내 말 쪼깐 들어라.” “아버지는 별 걱정을 다 하요, 내가 뭔 죄가 있간디, 그라요. 걱정 말랑께라우.” “중재나 잘 보시오.”

“용수야! 요새 통 꿈자리가 사납단 말이다.” “니 동생이 그놈의 보도연맹인가, 지랄인가에 가담했다고 죽여 버리지 않았냐?” “너도 잡히면 죽은 깨 쪼끔만 조심하란 말이다.” “아부지는 왜 고렇게 걱정이 많소? 난 죄가 없당께라우.” “그래도 걱정이 되요. 긍께 눈치가 다르고 낌새가 이상하면 얼릉 내빼 집으로 오시오 잉. 참말로 걱정이 대어 부요야. 난 중재 젖 먹여야 한께 따라가도 못하요.” “걱정 말랑께, 자네까지 왜 그랑가, 나 빨리 일 마치고 올 것잉께.”

“가족들이 말리면 잔 듣제만 누구 탁해 각고 그라고 고집이 씬가 모르것당께.” “시아재 죽은 지가 얼마나 됐다고 저라고 겁이 없는가 몰라.”

밭뙈기라고 해 보아야 너마지기 정도였다. 그곳은 덕진면 분주소 가는 길목에 있었다. 진등재 밭에 뒤엄짐을 막 내리고 쟁기로 갈아 놓은 고랑을 괭이로 고르면서 올해는 내 아들 중재가 생겼으니 보리농사를 잘 지어 배를 굶겨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며 땀을 훔치고 허리를 잠깐 펴는데 경찰과 이웃마을의 악명 높은 형사 안율이가 나타나서 갑자기 총을 들이댔다.

“니가 신용수지?” “그란디 왜 그라요. 내가 뭔 죄를 지었다고 그라요?”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분주소에 가보면 알 것 아니냐?” “빨리 따라오지 못해?” “나 참, 이상해 부네, 난 절대로 못 가것소” “이 새끼 보소, 이미 다 알고 왔어, 니 동생이 신부길이지?” “그란디라우, 죄도 없이 당신들이 죽여 부렀지 않소.” “잔소리 말고 빨리 따라와” “못 가겄소. 내 자식이나 한 번 보고 갈께라우, 돐도 아직 안 지났는디.” “이 새끼야. 너도 자세히 조사해봐야 안께, 잔소리 말고 따라와”
내가 발버둥을 치니 노끈으로 묶어 덕진 분주소로 끌고 갔다. 어린 젖먹이 새끼와 각시가 눈에 밟혀 앞이 깜깜하고 오금이 저렸다. 분주소 유치장에 들어가니 나 말고도 예닐곱 명이 잡혀와 초죽음이 되었다. 오후부터 문초가 시작되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물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고문에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동생은 제법 똑똑하고 야무져서 보도연맹에 가입한 것 같지만 나는 장남으로 집안을 책임지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 사실이 확인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앉을 자리를 지시했다.

“이 줄에 있는 놈들은 죄가 없는 게, 내일 풀어 줄 것이다” “휴! 살았군. 그래도 양심은 있네. 내일이면 어린 내 새끼를 볼 수 있겠구나!”

그러나 아뿔싸! 전황이 불리했다. 그때가 12월 초순이니, 1.4후퇴가 오고 있었다. 새로운 전통이 날아온 것인가? 예비 검속자들을 모조리 사살하라는 명령이 하달된 것이다. 이들이 가장 먼저 변절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보도연맹원에 가입한 사람과 같이 취급하여 검속자 12명을 모두 트럭에 싣고 한새 다리 부근 야산으로 끌고 갔다.

“탕! 탕! 탕!”

‘아! 억울하다! 우리들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찰나(刹那)의 시간만 지체되어도 무사히 살아날 텐데, 순식간에 우리들의 운명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아! 내 자식 중재야! 네가 커서 이 애비의 억울한 한을 꼭 풀어다오! 억울해! 흑! 흑!’

“아! 아버지! 아버지!”

총 자국이 선명하여 피 흘리시는 아버지가 절규하셨다. 깜짝 놀라 소스라치면서 깨어보니 악몽이었다. 나 뿐만 이런 꿈을 자주 꾸겠는가? 영암에서만도 만여 명이, 전국에서 100만여 명이, 전쟁의 무고한 인명 피해….

‘아버지!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드릴게요! 월출산이어 지켜 봐다오!’

지난 11월 18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931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6회 영암군합동위령제를 모실 때, 초헌관으로 정성의 향과 술을 올렸다. 우연챦게 중앙에 큰 삼촌 ‘신부길’과 아버지 ‘신용수’ 위패가 위치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혼백이라도 오셔서 흠향하실까?

지리산 자락 활성산과 명산 월출산은 빨치산과 경찰의 격전지로 타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4년 동안 진실규명이 이루어져 필자는 그때 큰 삼촌과 아버님의 억울한 진실은 규명되었으나 아버지는 기간 실효에 법정투쟁을 못했다. 10여 년 전부터 국회에 ‘과거사’ 특별법이 발의되어 지금은 국회 행안부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필자는 영암군유족회원들을 만나 사실 확인서를 작성해 공증해 드리는 봉사활동을 2년 동안 하고 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랄까?
70년 전 한국전쟁의 아픔이 우리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져 간다. 원혼들이 구천을 떠돌아 언제 편히 잠드실지 모르겠다. 부끄러운 후손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신중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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