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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출신 풍수지리설의 시조 ‘도선국사’
서 일 환

서호면 산골정마을生
전 광주우리들병원 행정원장
역사야톡 1~6권 저자
역사 칼럼니스트

도선(道詵)은 신라 흥덕왕 때 영암 구림마을에서 태어난 승려이다. 처녀가 빨래터에서 떠내려가는 오이를 먹고 아이를 낳았다. 아버지는 처녀가 낳은 아이를 숲에 버렸는데 비둘기들이 아이를 감싸고 보호해 주자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서 길렀다고 한다. 이후로 비둘기 구(鳩)자와 수풀 림(林)자를 써서 구림(鳩林)이라고 부른다.

도선은 15세에 지리산 화엄사에서 출가하여 곡성 태안사에서 혜철선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운봉산, 태백산을 비롯한 전국을 유람하며 수행했다. 37세에 광양 옥룡사로 들어가서 35년 동안 수행을 하였고 입적할 때까지 제자를 양성했다. “인연으로 와서 인연이 다하여 떠나는 것이니 슬퍼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72세의 일기로 입적했다.

도선의 사후에 신라 52대 효공왕이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고려 15대 숙종이 대선사(大禪師)로 추증하고 왕사(王師)로 추존했고, 고려 17대 인종이 선각국사(先覺國師)로 추봉했다. 대선사는 선종(禪宗) 승려들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법계(法階)이며, 왕사(王師)와 국사(國師)가 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왕사는 임금의 스승으로 책봉된 승려를 말하며, 국사는 나라의 스승으로 고승대덕에게 부여하던 존호를 말한다.

도선은 음양도참설과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지기가 왕성하면 왕조가 성하고 지기가 쇠퇴하면 왕조도 멸망한다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과 땅의 기운이 쇠한 곳에 절과 탑을 세워 땅의 기운을 보완한다는 비보사탑설(裨補寺塔設)을 주장했다. 도선비기, 도선답산가, 송악당명기, 옥룡기, 삼각산명당기 등을 남겼으나 실물은 전해지지 않는다.

도선비기(道詵秘記)는 고려사에 도선이 지었다고 전하는 풍수서로 현재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인간의 길흉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기록하여 비밀스런 기록이라는 뜻에서 ‘비기’라고 하였다. 고려사는 고려 태조부터 마지막 공양왕까지의 역사를 기전체로 작성한 139권의 역사서로 조선 문종 때 편찬됐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에게 “지금부터 2년 뒤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고 예언하며 집터를 정해 주었다. 왕건이 17세가 되자 지리(地利), 천시(天時)를 알려 주었다고 전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아 도읍지를 정하려던 무학대사의 꿈에 도선이 나타나서 “십리를 더 들어가 보아라”는 가르침을 주었고 그곳에 터를 잡아 경복궁을 창건했다고 전한다.

옥습대사(玉習大師)는 도선의 고비(古碑)가 비바람으로 마멸되자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를 세웠다. 선사비는 도선국사와 세조의 왕사인 수미선사의 업적을 기록했고, 양 측면에 양각된 쌍용은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이며 2004년 보물 제1395호로 지정됐다. 도갑사는 해남 대흥사의 말사이며, 도선이 문수사 터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수미선사가 세조의 지원을 받아 966칸의 대가람으로 도갑사를 중창했다. 국보 제50호 해탈문과 보물 제89호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한 문화재가 남아 있다.

서일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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