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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지역의 솟대 신앙을 확인시킨 새 문양■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06>정촌고분 금동신발 새(鳥) 문양과 솟대

마한의 역사체험 기회 늘려야

지난 11월 1일 초당대 학생들과 영산강유역 고대 마한왕국 탐사프로그램으로 국립나주박물관·시종마한공원과 남해신당·금동관편이 출토된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 발굴현장 그리고 최근 개관한 트로트가요센터와 왕인문화공원을 다녀왔다.

행사에 참여한 40여 명 대부분이 영암을 처음 찾는 학생일 뿐만 아니라 마한역사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매우 소략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어서 영암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필자는 답사내내 영암지역이 고대 마한왕국의 중심지였음을 강조하였다. 이번 답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우리 학생들이 마한역사는 물론 고대 영암지역의 역사적 위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다. 정촌고분 특별전 설명을 맡은 국립나주박물관 이진우 학예사, 발굴현장에 나와 설명을 직접 해준 이범기 전라남도 문화재연구소장, 그리고 행사를 도와준 김한남 영암문화원장, 김점수 마한축제위원회 부위원장 등 모든 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런 행사가 자주 기획되어 고대 마한왕국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국립나주박물관의 ‘마한사람들 큰 무덤에 잠들다’라는 기획전을 보며 지난 호에서 다룬 금동신발을 꼼꼼히 살필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것을 확대경으로 실물을 확인하니 금동신발이 갖는 여러 상징성이 느껴졌다. 단지 금동신발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이 지역 지배세력의 실체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하게 형상화된 높은 예술성을 극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유물에 나타난 상징들은 마한사회를 살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지난 호에서 국내 출토 여느 금동신발과 구별되는 정촌고분 출토 신발의 여러 마리의 용 문양을 토대로 하여 마한인의 사후 세계관을 살폈다. 고구려 계통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고구려-백제-마한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동행한 초당대 신정훈 교수 역시 의문을 품고, 고구려에서 백제를 거치지 않고 마한으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필자의 견해에 동감을 표했다.

여하튼 정촌고분 출토 신발은 당시 정치체 수준을 살핌은 물론 다양한 문양을 통해 당대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예술세계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를 살피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의 새 문양

좌우 측면 상·하단과 발등 쪽에 새(鳥)가 장식되어 있다. 금동신발의 문양 배치를 보면 일정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 일정한 규칙이 있다. 각 측 판의 가장자리에 새가 배치되어 있다. 머리에서 바로 이어지는 큰 부리, 동그란 눈 등으로 표현되었다. 부리는 상당히 강조한 듯 날카롭고, 날개는 ‘ㄱ’자로 꺾인 것이 있는 반면, 활짝 펴 날아가는 형태도 있다. 이를 보면 신발에서 따로 조각한 용과 함께 새를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종 마한역사공원 입구에는 우뚝 선 ‘솟대’가 마한왕국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필자의 고향마을 입구에도 ‘소때미’라 부른 곳이 있다. 이곳에 과거에 솟대가 세워져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듯 우리나라 마을마다 장대나 돌기둥 위에 나무 새나 돌 새가 올라앉아 있다. 이를 솟대라고 불렀다. 솟대의 본래 이름은 솟대만이 아니다. 짐대, 오리대, 솔대, 소줏대, 수살이, 거릿대, 액맥이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졌다. 솟대보다는 짐대나 오릿대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이를 일부 학자들이 솟대라는 단일 명칭을 획일적으로 붙여놓으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하였다.

‘삼국지위지동이전’을 보면, “(삼한에는) 귀신을 믿기 때문에 국읍에 각각 한 사람씩을 세워 천신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천군이라고 부른다. 또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으니 그것을 소도라 한다. 그곳에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다른 지역에서)그 지역으로 도망 온 사람은 누구든 돌려보내지 아니하므로 도둑질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라 하여 신성 구역에 해당하는 별읍 즉 소도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대표적 민속학자인 손진태 선생은 솟대와 소도가 발음이 유사함에 착안하여 ‘솟대=소도’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이 주장이 그대로 사실로 받아 들여져 왔다. 한국사 교과서에도 천신을 제사하던 성지인 소도를 설명하며 솟대 사진을 안내하고 있다. 솟대는 ‘새(鳥)’와 관련된 것으로 소도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다만 넓은 의미로 볼 때 장대 문화의 하나로 신성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솟대나 소도는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새는 인간과 하늘을 연결하는 매개체

새는 예로부터 태양을 상징하거나 죽은 자의 영혼을 천계(天界)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매개자로 인식되었다. ‘산해경’에는 까마귀가 태양을 지고 하늘을 운행한다고 하였고, ‘회남자’에는 태양 속에 준조(踆鳥)가 있는데 ‘삼족오(三足烏)’를 이른다고 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새가 표현되어 있는데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원안에 있는 삼족오가 그것이다.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 무용총, 각저총 등 다수의 고분벽화에 회남자 기록처럼 태양 속에 삼족오가, 달 속에 두꺼비가 묘사되어 있고, 그 위치도 대체로 동편과 서편에 각각 위치한다. 이를 보면 삼족오는 태양을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조류와 태양과의 관계에서 주목되는 것이 솟대다. 동북아시아의 솟대 신앙에서 신간(神竿) 상단의 새 또한, 태양을 의미하는 까마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샤머니즘에서 조류는 영혼의 인도자들이다. 죽은 자를 천계로 안내하는 역할에 대해서 역시 삼국지위지동이전 변·진조에 실려 있다. 큰 새의 깃털로 장사 지내는데 그것은 사자(死者)가 새처럼 날아다니라는 뜻이다(以大鳥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

이 내용이 비록 변한·진한 조에 기록되어 있지만 변한·진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마한 등 삼한지역 모두에 해당할 것이다. 이 기록을 가지고 변한과 진한에서는 새의 깃털을 시신과 함께 부장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곧 새가 하늘을 날아 사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운반하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고구려 시조 동명왕 신화 전승에도 새가 천손인 주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장면이 나와 있다. 즉 새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본다면 금동신발에 보이는 새 역시 죽은 자를 천계로 인도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경주 서봉총 출토 금관의 새 장식도 마찬가지로 죽은 자를 천계로 안내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다시들 정촌고분의 출토 금동신발은 그 문양을 통해 고대 마한인들의 사후 세계관을 알려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지위지동이전에 보이는 솟대 문화도 영산강유역의 마한지역에 뿌리내려져 있음을 확인하여 준다.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박해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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