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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산조의 명인 김창조’
서 일 환

서호면 산골정마을 生
전 광주우리들병원 행정원장
'역사야톡' (1~6권) 저자
역사 칼럼니스트

가야금과 거문고에 능했던 김창조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시나위 가락에 판소리 가락을 엮어서 특유의 남도 가락과 리듬을 바탕으로 가야금 산조의 틀을 만들었다. 시나위는 무속음악이고, 판소리는 소리꾼이 고수(북 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말(아니리), 몸짓(너름새)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을 말한다.

김창조(金昌祖)는 1865년 전남 영암 회문리 월출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음악적 소질이 뛰어나서 어려서부터 가야금과 거문고를 배웠고 30세 무렵 본격적인 음악을 시작했다. 거문고 선율을 산조가락의 틀로 짜서 만든 가야금 산조(伽倻琴散調)를 정립했다.

김창조는 60세가 되자 영암을 떠나 광주, 나주, 전주, 정읍, 대구 등에서 가야금병창을 연주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생활이 궁핍하여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암 구림출신 한성기(韓成基)가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의 수제자로 가야금 산조를 전국에 전파했다.

영암 덕진출신 김죽파(金竹坡)는 김창조의 손녀이자 한성기의 제자이며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만들었다. 영암 시종출신 김병호(金炳昊)는 김창조에게 입문하여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를 만들었다. 장흥출신 최옥산(崔玉山), 나주출신 안기옥(安基玉) 등이 김창조에게 산조를 전수받아 그 맥을 잇고 있다. 가야금산조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계승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악기를 연주하며 춤과 노래를 즐겨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동이족은 하늘에 제를 지내고 주야로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고 기록됐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가야금, 거문고, 비파는 신라삼현(新羅三絃)으로 꼽힌다’고 기록했다.

‘가야금’은 가야의 가실왕의 명으로 우륵이 만들어 신라의 진흥왕에게 전했다고 하며 가얏고라고 한다. 좁고 긴 오동나무 공명판에 명주실 열두 줄을 매달아 왼손 손가락으로 뜯고 퉁기며 오른쪽 손으로 줄을 눌렀다 놓았다 하며 소리를 내어 부드럽고 청아하여 여성적이다.

‘거문고’는 고구려의 왕산악이 중국의 악기를 개조하여 연주하자 검은 학이 날아와서 현악금(玄鶴琴)이라고 한다. 거문고는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붙여서 만든 울림통에 명주실 여섯 줄을 매달고 술대로 내리 치거나 거슬러 쳐서 소리를 내며 소리가 깊고 중후하여 남성적이다.

‘비파’는 서역의 악기로 당나라를 통해 고구려에 전해졌다. ‘손을 밖으로 밀어서 소리 내는 것을 비(琵)라고 하고, 손을 안으로 끌어들여서 소리 내는 것을 파(琶)라고 한다’고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전한다. 명주실로 만든 줄을 술대로 소리를 내는 악기이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널리 연주됐고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다.

‘예로부터 계통을 이루어 전하여 내려오는 음악’을 전통음악이라고 하며 국악(國樂)이라고 한다. 목적에 따라 아악, 제례악, 궁중음악 등 양반계층이 즐기는 정악(正樂)과 민요, 잡가, 농악, 판소리 등 민중들이 즐기던 민속악(民俗樂)으로 구분한다. 선비들의 노래는 가곡이라 하였고 서민들의 노래는 소리라고 하였다.

유래에 따라 한국 국악을 아악(雅樂), 당악(唐樂), 향악(鄕樂)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판소리, 산조, 창극은 전통음악에서 제외한다. 아악은 송나라에서 들어온 음악을 뜻하며 궁중의 제사음악으로 이용됐다. 당악은 당나라 음악이라는 뜻이며 원나라, 송나라 등에서 전래된 음악을 포함한다. 향악은 아악과 당악을 제외한 민족의 토착음악으로 속악이라고 한다.

서일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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